은행권에 사상초유의 총파업이 예고돼 관련부처와 금융계에 초비상이 걸렸다.

파업지도부는 이번 파업이 5개 부실은행 퇴출과 공적자금 투입은행의 대규모 감원으로 초래됐다가‘용두사미’격으로 끝났던 지난 98년 9월말의 은행파업때와는 달리 강도 높은 파괴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실제로 이번에 파업지도부는 한국 노동운동사상 최대규모인 100억원대 파업기금 조성과 파업시 전산망 장악을 추진하는 등 전례없이 전투적 태도로 일관, 정부당국과 은행 경영진을 당혹케 하고 있다.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한국노총산하 금융산업노조(이하 금융노련)는 주말인 지난 1일 서울 보라매공원을 비롯, 대구,부산,전주,광주,제주 등에서 총 5만명의 은행 노조원과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총파업 진군대회’를 성공리에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날 대회에서 금융노련 이용득 위원장을 비롯한 산하 지부 및 회원조합 상임간부 200여명은 삭발식과 구속결단식을 갖고, 오는 11일 오전 8시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키로 했다.

이어 대다수 은행 노조들은 3일 각 은행별로 총파업 찬반투표에 돌입한 데이어, 이날 저녁에는 각 은행 전산담당 노조원회의를 소집했다. 특히 이번 전산담당 회의는 지난 98년 9.29파업당시 전산망 장악에 실패, 파업전선이 초기에 무너졌다는 파업지도부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져 정부당국 및 은행권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금융노련은 이와 함께 오는 6일까지 한국노동운동사상 최대규모인 시중·특수은행 90억원, 지방은행 10억원등 도합 100억원대의 파업기금 조성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증거다.

금융노련 상부조직인 한국노총은 이번 은행파업을 지난주 벌어진 롯데호텔 및 지역의료보험 파업 강경진압으로 표출된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노동정책을 전환시키는 일대계기로 삼겠다는 방침이며, 이에 따라 오는 11일 은행 총파업을 시작으로 싸움을 다른 산별노조로까지 확산시킬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민주노총도 오는 6일 중앙위원회 회의를 소집, 공조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우리는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이 됐다”고 천명한 금융노련은 그동안 여러차례 말을 바꿔온 정부와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며, 김대중대통령이 직접 나서‘은행간 강제합병은 없다’는 대국민선언을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의 안이한 대응=정부는 3일 오전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 주재 은행장 회의, 재정경제부와 민주당간 고위 정책협의 등을 소집해 은행파업대책을 논의했다. 그러나 회의결과는 뚜렷한 게 없었다.

이용근 금감위원장은 문제가 된 공적자금 투입은행간 강제합병과 관련, “공적자금 투입은행은 대주주인 정부책임하에 자발적 구조조정을 유도하겠으며, 금융지주회사로 합치더라도 조직 및 인원 감축은 없을 것”이라는 종전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이위원장의 이같은 발언은 은행노조원은 물론, 일반 경제전문가들로부터도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중복점포가 전체의 30∼40%에 달하는 공적자금 투입은행들을 합치면서 인원과 점포를 안 줄이고 어떻게 정상경영이 가능하겠느냐”며“발등의 불부터 끄고 보자는 식인 정부의 안이한 대책이 도리어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해법은 없는가=이번 은행파업 갈등의 해법은 정부와 은행노조간 정직한 대화에 달려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 견해다.

우선 정부는 그동안 막연하게 추진해온 대형화위주의 합병 시나리오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은행산업의 최대문제는 규모가 아닌 부실자산의 청산문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방향을 잘못 잡았고, 그 결과 필요이상의 노사갈등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은행노조도 보다 차분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잘못된 시나리오에 따른 강제합병은 차단할지라도 합병 자체의 길마저 차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노사 양측이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향후 전개될 합병의 바람직한 모델에 대한 논의와 이를 위한 협의창구 마련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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