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정 규모 이상의 재벌그룹에서는 '그룹 노사협의회 설치'를 의무화하도록 근로자참여 및 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근참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개별기업(사업장)의 울타리에 갇혀 있는 노사협의회를 소속 계열사나 고용형태, 노조 가입 여부에 관계없이 개방하자는 것이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노사정위 대회의실에서 개최한 공정노동시장연구위원회 공개워크숍에서 김상조 한성대 교수(무역학)가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를 위한 경제개혁 방향’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김 교수는 "전략적 경영 판단은 기업집단 차원에서 이뤄지는데 노사관계는 개별기업 단위에서만 협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비정규직 등 다수의 노동자들이 개별기업 단위 노사관계 틀에서 배제되는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사관계도 기업집단법적 접근방식 필요”
김 교수는 우선 재벌개혁에 대해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부활이나 순환출자 규제·금산분리 강화 등을 파편적으로 열거하는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재벌개혁이 성공하려면 단일한 특별법을 만드는 것에서 탈피해 이른바 회사법·통합도산법·경쟁법·세법·금융법·노동법 등을 정비하고 상호보완적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다원적·절충적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기업집단법적 접근’은 노사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노조조직률 10%, 협약적용률 10%인 노사관계는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경제질서를 만드는 데 최대 위험요인 중 하나"라며 "과거 ‘추격형 낙수효과 모델’의 전성기에 형성된 노사정 간 암묵적 담합구조부터 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룹 노사협의회가 그러한 노사관계 개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그룹 노사협의회가 실제로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할 지 알 수 없고, 해당 기업집단 노사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면서도 "(이러한 논의가) 독일식 공동결정 제도의 도입이나 노사정위원회에서의 사회적 대타협 같은 근본주의적 대안을 관성적으로 되풀이하는 것에서 탈출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교수에 따르면 기업집단법적 접근 방식은 재벌그룹과 준내부조직적 관계를 맺는 하청기업과 대리점 등에도 적용할 수 있다. 공통의 갑과 거래하는 다수의 을에게 집단적 권리를 부여하고 네트워킹을 강화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초기업적 임금기준으로 노동시장 평준화해야”
이날 워크숍에서는 사회적 형평성을 보장하기 위해 임금협상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기초교육학부)는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특성은 짧은 근속연수와 비대한 비정규 고용·심각한 기업규모별 격차로 압축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고용체제가 기업규모에 따라 분절적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며 “사회적 형평성을 보장할 수 있는 임금결정 기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대안으로 초기업적 임금기준을 설정하자고 제안했다. 정 교수는 “초기업적 임금기준의 설정은 직무급이나 숙련급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하지 않아도 가능하다”며 일본 노동계가 추진했던 ‘개별임금 정책’을 예로 들었다. 일본의 개별임금 정책은 ‘30세·10년 근속’ 같은 특정 속성을 가진 노동자의 임금기준을 설정하고 모든 조합원의 임금을 해당 기준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정 교수는 “개별임금 정책의 성과는 제한적이지만 일본에서 이런 방식을 통해 실제로 한 업종 내 기업 간 초임이 대체로 통일되는 효과를 거뒀다”고 설명했다.
한편 공정노동시장연구위는 노동시장의 공정한 질서 구축을 통한 양극화 해소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올해 8월 출범했다. 최영기 노사정위 상임위원을 위원장으로 10명의 전문가가 참여하고 있다. 내년 2월께 종합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