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울산저널
편집국장

비 오는 날 7명의 사망자를 낸 서울 노량진의 서울시 관급공사 현장을 두고 여러 신문이 제법 많은 지면을 사용하면서 보도했다.

우리 언론은 눈물을 쏙 뽑아내는 안타까운 죽음을 다룬 감성적 기사부터, 시공사와 감리업체가 안전을 무시한 공사강행을 질책하는 기사에다, 서울시가 늦게나마 영업정지 등으로 업체를 처벌하겠다는 뒷북 행정까지 상세하게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휴먼스토리에 집중해 18일자 14면 머리에 <차가운 주검 올라올 때마다 … 실낱 희망이 오열로>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고, 그 밑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공사 강행” … 빨리빨리가 또 화 키웠다>며 우리 사회의 ‘빨리빨리’ 문화를 비판했다.

서울신문은 같은날 16면에 <시공사, 사고 전날 배수펌프 철거, 감리업체는 수위 위험경고 무시도>라는 기사와 함께 서울시가 <한전 미준수 업체 영업정지 등 행정처벌 방침>이란 제목의 작은 기사를 붙여 서울시 행정당국의 후속대책을 소개했다. 서울신문 기사는 17일 오전 현장을 찾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말을 길게 인용했다. 서울신문은 “철두철미하게 조사해 재발방지 대책을 만들겠다”는 박 시장의 말을 옮겼다. 행정기사를 많이 쓰는 서울신문답게 서울시의 발언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한겨레는 같은날 9면에 좀 뜬금없이 <'노량진 수몰' 실종 6명 모두 사망 확인>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의 제목은 17일 저녁에 만든 지역 배달판엔 <'노량진 수몰 참사' 실종자 주검 출구 계단 1미터 바로 앞서 발견>이란 제목을 달고 나왔다.

한겨레의 두 제목 모두 수사에 참고할 내용이다. 지역 배달판에선 시신이 ‘출구 1미터 앞에서 발견’된 점을 강조해 안타까움을 극대화하는 최루성 효과를 노렸다.

신문마다 많은 지면을 할애했지만 관점과 보도 태도는 약간씩 다르다. 다른 한 신문은 출국 사흘을 앞두고 숨진 조선족 이주노동자의 주검이 발견돼 유족들이 오열하고 있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기사를 쏟아내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 언론은 사고 때마다 감성에 호소하거나, 경찰 수사관처럼 숫자(1미터)에 몰입한다. 언론이 여기 매달리는 사이,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는 덮인다.

나는 이 사고를 접하고 곧바로 “박 시장이라도 별 수 없구먼, 관급공사에 여전히 다단계 하도급 관행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관급공사마저 편법적인 다단계 하도급이 근절되지 않고서는 이런 사고는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비록 이 사고를 보도한 18일자 지면을 가장 작게 할애한 조선일보가 오히려 문제의 본질에 비교적 가장 접근한 기사를 썼다. 조선일보는 이날 10면에 쓴 3단락짜리 2단 단신기사 제목을 <하도급업체, 검측 일정 맞추려 공사 강행 의혹>이라고 달아 하도급 구조의 문제를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사고 다음날이 검측 날이었다는 원청업체 공사팀장의 주장을 보도했다. 검측이란 감리회사가 작업이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실제 검측 승인을 못 받아 공사기간이 늘어나면 인건비 등 비용이 급격하게 늘어나 하도급업체가 그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안타까운 휴먼스토리도 문제지만, 수사 속보 쓰듯 진행상황을 일일이 나열하는 기사는 사고의 본질에 접근할 수 없다.

서울시가 하는 관급공사에도 여전히 다단계 하도급이 자행되는 서글픈 건설현장이 이번 사고를 낳았다. 박 시장의 말 앞에 “철두철미하게”나 “모든 문제를 검토”한다는 미사여구를 아무리 많이 붙여 봤자, 사후약방문이다.

울산저널 편집국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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