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210원. 월급으로 밥은 먹고살 수 있게 해 달라는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외침에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답변이다. 지난 5일 새벽 4시9분. 256만5천명에 이르는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생존임금'이 결정됐다. 올해보다 350원(7.2%) 올랐다. 월급으로 계산하면 108만8천890원이다. 하지만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결과 지난해 말 기준으로 단신노동자 생계비(151만2천원)도 안 된다. 워킹푸어(근로빈곤층)의 굴레를 벗어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이날 서울 논현동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7차 전체회의가 9시간 동안 진행됐다. <매일노동뉴스>는 4일 밤 9시부터 5일 새벽 5시까지 최저임금위 심의 막전막후를 취재했다.

◇4일 밤 9시="선을 넘지 마시오." 세관을 에워싼 경찰은 이 같은 문구가 적힌 폴리스라인을 치고 최저임금1만원위원회와 대치했다. 1만원위는 "최저임금 취지대로 최저임금으로 생활이 가능하려면 1만원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외쳤다. 1만원위는 이날로 27일째 최저임금위 앞에서 노숙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1만원위의 외침은 경찰의 해산명령과 뒤섞여 세찬 비바람 속에 흩어졌다.

세관 5층에서는 저녁 7시부터 시작된 전체회의가 한창이었다. 두 겹의 철문으로 굳게 닫힌 채 삼엄한 보안 속에서 진행됐다. 임시로 설치한 1층 기자실에는 밤샐 채비를 한 기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합리적인 최저임금'을 공약한 박근혜 정부에서 첫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터라 많은 관심을 끌었다.

◇4일 밤 10시30분=최저임금위는 노사 간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자 정회를 선언했다. 5차 전체회의에서 노동계는 120원 양보한 5천790원(19.1% 인상)을 제시했고, 사용자는 올해 대비 1%(50원) 인상한 4천910원을 수정안으로 낸 바 있다. 노사는 이후 수정안을 내놓지 않았다.

사측이 제시한 수정안은 정부가 상반기에 전망한 소비자물가 상승률(2.3%)과 경제성장률(2.3%)에도 미치지 못했다. 사측은 지난 6년간 경기변동과 상관없이 동결·동결·-5.8%·동결·동결·동결을 거듭해 왔다.

노동계는 수정안을 검토하지 않기로 했다. 사측이 대통령 공약조차 무시하며 제시한 수정안에 대해 공익위원이 제대로 된 중재 역할을 하라는 의미였다. 노사는 공익위원에게 심의촉진구간을 제시하라고 요청했다. 공익위원들은 논의에 들어갔고, 1만원위는 노속농성자 10여명만 남긴 채 시위를 중단했다. 사용자측은 "6%를 넘는 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경제지 기자들에게 귀띔하면서 언론플레이를 했다.

◇4일 밤 11시=다시 전체회의가 소집됐다. 철문 틈 사이로 공익위원들이 최저 2.8%(5천원)에서 최고 12%(5천440원) 심의촉진구간을 제시하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탕탕탕. 노사 간 논의를 위해 또다시 회의가 중단됐다. 시계는 자정을 넘어섰다.

공익위원 간사가 노사를 오가며 의견을 수렴했다. 이장원 간사는 "공익위원들이 중재안을 낼 테니 표결에 참여해 퇴장하지 말아 달라"고 노동계에 주문했다. 노동계는 "이명박 정부 시절 최저인상률을 보인 최저임금을 감안하고 노동자 평균임금의 50%에 다다르려면 적어도 두 자릿수 이상의 중재안이 나와야 한다"고 요구했다. 사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에도 8% 인상률이 논의된 바 있다.

◇5일 새벽 1시20분=전체회의가 속개됐다. 회의가 시작된 지 10여분 만에 회의 중단을 알리는 망치소리가 적막을 깼다. 노동계 한 인사가 최저임금 결정구조의 불합리성에 대해 입장을 밝히자, 공익위원들이 “중재안을 마련할지 말지 다시 논의하겠다”며 회의를 중단시켰다.

기약 없는 내부회의가 시작됐다. 이장원 간사는 양대 노총 관계자들과 개인 면담을 하며 중재안에 대한 의견을 조율했다. 맨 처음에는 대통력직인수위가 논의했던 7.8~8% 인상률이 오가더니 나중에는 7.0~7.2%로 의견이 모아졌다. 사용자측에서는 전원 사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익위원 중에서도 "너무 높다"는 의견이 나왔다.

두 자릿수 인상률을 요구한 노동계도 고민에 빠졌다. 88년 처음 최저임금을 심의한 이후 올해 처음으로 소득분배개선율을 만들어 최저임금 인상안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과 대통령 공약조차 비웃는 안을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의견이 맞섰다.

◇5일 새벽 3시15분=전체회의가 시작됐다. 정보과 형사들이 모여들었다. 새벽 3시40분께 이찬배 여성연맹 위원장을 제외한 민주노총 노동자위원 3명이 사퇴했다. 주봉희 부위원장은 "대통령이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소득분배율을 반영한 최저임금 기준안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공익위원들과 사측이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며 "며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우롱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저임금위가 7.2% 인상안을 상정하자 사용자위원 9명이 기권표를 던지고 나왔다. 사용자위원들은 "공익위원들이 중소·영세기업의 어려움울 모르는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5명이 표결에 들어가 만장일치로 내년 최저임금을 확정됐다. 이찬배 여성연맹 위원장과 이정식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장은 “차선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퇴장한 세 분과 최저임금에 대한 입장은 다르지 않다"면서도 "최저임금 인상안에 2.5%의 소득분배개선치를 반영해 5년간 최저임금 인상 여지를 남긴 만큼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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