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불안정
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9일은 한진중공업이 정리해고자를 복직시키기로 약속한 날이다. 85호 크레인 위의 김진숙씨를 살리기 위해 많은 이들이 희망버스를 탔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정리해고의 부당성과 정리해고자들의 아픔에 대해 가슴 깊이 공감했다. 한진중공업은 그런 사회적 힘에 밀려 정리해고자 복직에 합의했다. 국회 청문회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의 약속, 그리고 그 이후 금속노조와 합의한 내용은 정리해고자들을 복직시키는 것이었다. 비록 복직의 형태는 ‘재고용’이라고 표현됐지만 그 실질 내용은 ‘조건 없는 완전 복직’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을 의심하게 된다. 그동안 한진중공업은 복수노조를 만들고 민주노조를 말살하려는 행태를 계속해 왔다. 필리핀 수빅공장에는 여전히 물량이 들어오는데 영도조선소에는 일감이 없다는 이유로 일방적인 휴업조치를 했다. 200명을 선별해 복직시키는 과정에서 금속노조 지회 조합원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심지어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민주노조를 탄압해 왔다. 그리고 복직시점이 다가온 지금 정리해고자들에게 어이없는 ‘노예서약서’를 들이밀면서 서명을 하라고 한다.
그 서약서는 "근무지 변경이나 부서이동에 동의한다"거나 "신체검사 또는 신원조회 결과 부적격으로 판정된 경우, 수습기간 또는 수습 종료 후 종업원으로서 부적격이라고 판단한 경우 어떠한 처분도 감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복직자들을 영도조선소가 아니라 전국 각지의 건설부문으로 보낼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노동자들이 투쟁 과정에서 사법처리당한 것을 핑계 삼아 언제라도 다시 해고할 수도 있으며 여기에 대해 저항하지 말라는 협박이다.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를 무시하는 인권침해 서약이다. 그리고 “이 서약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복직시키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명백한 약속 위반이다.
대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저버리거나 합의를 위반하는 일은 너무 일반적이다. 현대자동차는 대법원에서 “사내하청이 불법이며, 사내하청으로 일한 최병승씨를 정규직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판결했는데도 이를 이행하지 않고 계속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간을 끌고 있다. 자신들의 범법행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그에 맞서 투쟁한 이들을 해고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자기 회사 노동자들이 백혈병으로 죽어 가는데도 자신들의 책임을 면해 보려고 노동자들을 협박하고 관련기관에 로비를 한다. 쌍용자동차는 청문회에서 밝혀졌듯이 위장부도를 내고 회계를 조작해서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했다. 이윤만을 좇는 냉혹하고도 어리석은 기업들의 단면을 보여 준다.
이런 대기업의 행태에 대해 사회적 분노가 쌓여 가고 있다. 대통령 선거에서 각 후보들이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런 국민의 분노를 반영한 것이다. 노동자보다 이윤을 소중히 여기는 기업, 당장의 비판을 모면하기 위해 합의를 하고 그 약속을 다시 헌신짝처럼 버리는 기업은 오래 지탱할 수 없다. 한진중공업이 만약 노예서약서를 계속 고집하고 정리해고자들을 복직시키지 않는다면,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대한문 농성장에는 많은 시민들이 함께하고 있다. 정리해고 문제가 곧 나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모이는 것이다. 철탑에서 고공농성을 하는 현대자동차 비정규 노동자들과 함께하기 위해 시간을 내서 울산으로 내려가는 이들이 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가 남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오로지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을 내쫓을 때 많은 노동자들은 ‘함께 살기’ 위해 거리에 나섰고, 여기에 많은 이들이 연대하고 있다. 희망버스에 탔던 이들이 한진중공업 문제에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게 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방식으로 연대의 마음이 확장되고,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의지가 모이고 있다. 한진중공업을 비롯해 비정규직·정리해고·노조탄압으로 이윤을 더 많이 취하려는 기업들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만약 한진중공업이 정리해고자들을 조건 없이 복직시키지 않는다면, 이미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 대한 마음을 모은 이들이 희망버스를 더 큰 연대로 살려낼 것이다. 설령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자들이 모두 복직되더라도 희망버스 승객들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 복직 이후 잠잠해진 틈을 타서 다시 먼 거리로 발령을 내거나 혹은 몇 사람을 다시 해고시키려는 것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조남호 회장은 반드시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 진정 한진중공업이 사는 길이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