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조직비정규실장
초등학교 5학년인 작은 딸이 학원은 가기 싫은데, 영어를 배우겠다고 해 고민 끝에 작은 학습지 하나를 했다. 재능교육도 안 되고, 대교도 안 돼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30대 후반의 아주머니 선생님이었는데, 수수하게 차려 입고, 꼼꼼하게 아이를 지도해 줘 아이도 재밌어했다. 먹성이 좋아 1주일에 한 번 방문학습 때 빵이나 과일을 내놓으면 말끔히 비웠다. 화요일과 목요일 아침 8시엔 전화로 아이와 영어대화를 하며 학습진도를 챙겼다. 10개월쯤 한 것 같다.
이달 초 선생님이 울면서 그만두겠다고 했다. 학습지 교사가 학부모에게 털어놓기 힘든 얘기도 했다. 지사장이 일요일 하루종일 전체 교사를 불러 대형할인매장 안에서 회원모집 캠페인을 강제로 시켰단다. 유노동 무임금으로 하루 종일 서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저녁에 좌판을 걷을 때쯤 지사장이 매장 한가운데서 교사들을 세워 놓고 그날 가입실적이 5건밖에 안 된다고 다그쳤단다. 장 보러 오가는 시민들이 넘쳐나는 그곳에서 담배 피다 걸린 중학생 나무라듯 다그치는 지사장을 보고 만정이 떨어졌단다.
이후 선생님은 그날의 충격으로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병실에서도 카톡으로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고 하소연이다. 주말에 서울광장 천막에 들러 재능교육 유명자 동지에게 이 말을 전했다. 그 학습지회사는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지사를 운영하고 있어, 지사장마다 살아남기 위해 이런 식의 경영을 할 수밖에 없단다. 유명자 동지는 “그 선생, 조직 좀 하지 그랬어요?”라고 되물었다.
민주노총이란 조직이 우울증까지 걸린 그 교사에게 우산이 돼 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총선은 다가오지만 이런 특수고용노동자를 보듬는 정당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영원히 젊은 작가 김승옥의 ‘무진기행’처럼 안개 속이다.
민주당은 18대 국회 회기에 내놓은 김상희 의원 안이 훌륭한 법안이라고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김상희 의원 안은 특수고용직의 노동자성을 원천 부정하는 기반 위에 그들이 처우를 일부 개선하는 안이라 당사자들이 받아들이기 매우 어렵다.
언론사가 줄파업 중이다. MBC에 이어 KBS 새 노조도 파업에 들어갔고, 연합뉴스와 국민일보도 가세했다. 정수장학회 문제로 부산일보도 투쟁 중이다.
국민일보 문제를 좀 얘기해 보자. 언론노조 위원장까지 배출한 국민일보는 2000년 이후 처음으로 파업했다. 조용기 목사의 73년생 둘째 아들은 필자가 언론노조에서 일할 때부터 국민일보 회장이었다. 그는 그때 20대 후반의 나이였다. 그런 나이 어린 회장 밑의 사장은 언론인 출신의 60대 어른이었다. 참 이상했다. 그냥 전문경영인을 세우면 될 일이지 굳이 아들을 회장으로 내세워야 했는지. 그 회장님의 이중국적 문제가 불거지면서 국민일보의 치부가 조금씩 드러났다.
4년째 투쟁 중인 공공운수노조 소속 국립오페라합창단지부가 MB정권 초기 무더기 해고(해체)된 뒤 복직을 요구했다. 당시 유인촌 장관의 문광부는 예술노동자들에게 순복음교회에서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방식의 합창단으로 옮기라고 제의했었다. 물론 노동자들은 거부했다.
그런 국민일보의 지난 26일 월요일 신문은 가관이다. 1면 톱 사진은
세계은행 총재로 지명된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을 다룬 사설의 제목은 <오바마가 선택한 김용 총장의 리더십>이다. 세계은행이 미국의 사금고도 아닌데 미국 대통령이 그 은행 총재를 뽑는단다. 7면의 김용 총재서리 관련기사의 제목은 <클린턴 부부가 적극 추천>이다.
국민일보 말대로 하면 세계은행 총재는 미국의 전·현직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다. 정상적인 신문이라면 세계은행 총재의 임명절차를 취재하는 게 먼저다. 이런 식의 제목달기가 국민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줄지 국민일보는 생각지도 않는다. 모쪼록 국민일보 기자들의 투쟁으로 이런 편집부터 없앴으면 한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 (leejh6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