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
언론보도는 공식성을 따라다닌다. 환경운동단체가 ‘조력발전’은 필연적으로 갯벌을 파괴하는 환경재앙을 가져올 것이라고 외쳐도 공신력 있는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면 늘 1단 기사로 구석에 처박히고 만다. 그러나 정부기관의 공신력 있는 보고서나 자료를 통한 비판이라면 필요 이상으로 키운다.
중앙일보가 지난 13일 사회면(22면)에 "충남 태안과 서산의 가로림만 조력발전소가 갯벌파괴 피할 수 없다"는 내용의 기사를 발전소가 들어설 지역의 지도와 함께 제법 크게 썼다. 이 기사 작은 제목은 ‘환경영향평가서 단독 입수’다. 기사는 “2015년까지 조력발전용 2km 둑을 건립하면 여의도 4배 면적의 갯벌이 사라지고 어민들 양식업과 조업 피해도 생긴다”고 밝혔다.
언론은 꼭 이런 보고서가 나와야만 비판기사를 쓴다. 진실에 이르는 길은 늘 상식을 통해 달성된다. 조력발전이 갯벌을 파괴하는 건 상식이다.
나는 생각해 본다. 만약 정치적 압력 등 이런저런 이유로 보고서가 왜곡돼 조력발전이 갯벌과 주변 환경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결론으로 작성됐다면, 우리 언론은 어떻게 보도했을까. 보수신문은 당연히 보고서대로 받아쓴다. 그렇게 보고서대로 받아쓴 기사는 수많은 폐해를 낳았다. 대형 국책사업의 비용 대비 수익계산을 엉터리로 책정한 보고서도 별 고민 없이 보도했다. 그 결과 인천공항철도는 텅 빈 채로 달리는 깡통이 됐다. KTX 건설은 노태우 정권 때 내놓은 건설비를 과소 책정한 보고서대로 썼다가 결국엔 처음보다 4배 많은 20조원의 돈이 들어갔다. 그래 놓고도 언론은 늘 “보고서대로 썼을 뿐”이라고 빠져 나간다.
조력발전이 환경파괴를 안 한다는 보고서가 더 이상한 것 아닌가. 그런 보고서가 나왔다면 의심부터 해 보는 게 언론의 자세다. 달성보와 구미보·강정고령보·합천창녕보에 이어 함안보 상류쪽도 ‘파임 현상’으로 총체적 부실의혹을 사고 있는 4대강 사업을 환경단체의 시위와 정부의 강변 사이를 줄타기 하는 보도가 아니라, 문제점을 제대로 짚어 내는 기사를 썼더라면 어땠을까 한다.
선거판 보도도 마찬가지다. 여러 신문이 이름도 잘 모르는 이런저런 후보들의 가상대결 여론조사 결과를 앞다퉈 보도하고 있다. 한겨레마저도 12일 1면부터 여러 면에 설쳐 김태호·김경수·김도읍·문성근 등 여러 후보들의 가상대결을 다뤘다. 지금이 과연 그럴 때인가.
같은날 한국일보는 쌍용자동차 해고자 가족을 찾은 하버드 케네디스쿨 석사과정 학생들의 이야기를 큰 사진과 함께 2면 톱기사로 실었다. 총선 전까지 서울광장은 ‘노동자들의 희망광장’(한국일보 12일자 11면)으로 변해 있다. 퀵서비스·학습지 교사 등 해고자와 비정규 노동자가 눈발이 날렸던 지난 주말부터 1인용 천막 안에서 버티고 있다. 한국일보는 13일 아침에도 사회면(11면)에 서울광장에 천막을 친 비정규 노동자들의 사진을 실었다.
이번 선거에 각 당의 비정규직 공약을 비교하거나 비정규직으로 싸워 온 당사자들 중 과연 몇 명이 후보로 나오는지 살펴보는 신문이 없다. 언론은 비정규직을 놓고 벌이는 정당들의 홍보 프레임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국민일보의 15일자 사회면(9면) 사진은 더 엽기적이다. 서울광장 맞은편 호텔에서 시청 앞 잔디광장을 내려다보고 찍은 이 사진은 ‘봄맞이 새 옷 입는 서울광장’이란 제목으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14일 오후 작업인부들이 겨우내 시든 잔디를 걷어내고 새 잔디를 심는 등 봄맞이 단장을 하고 있다”는 설명을 달았다. 사진 속의 잔디밭 옆엔 벌레만한 크기의 비정규 노동자 20여명이 길가는 시민들에게 서명을 받고, 그 옆엔 1인용 천막 15동도 보이는데, 아무런 설명이 없다.
16일 밤 파업하는 언론노동자들이 여의도광장에서 기획한, 유명가수들이 대거 나오는 콘서트는 주목받아도, 해고자와 비정규직이 설 자리는 없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 (leejh6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