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
이번엔 ‘중국산 발암 국자’가 나왔다.(조선일보 8일 12면) 조선일보의 이 기사 제목만 보면 바다 건너 중국 얘기인줄 알고 넘어갈 수도 있다. 멜라민 분유 파동 등 워낙 중국 제품의 문제가 자주 보도되는 터다.
그러나 같은 내용을 다룬 같은날 경향신문 11면을 보면 정신이 확 든다. <홈플러스 국자서 발암물질>이란 제목이다. 동네마다 들어선 홈플러스의 국자에서 발암물질이 기준치의 9배나 초과해 회수 조치했다는 거다. 조선일보도 ‘홈플러스 통해 2천500개 팔려’라는 작은 제목을 달았지만, 큰 제목만 보면 남의 나라 얘기 같다. 이렇게 보도하면 안 된다.
미국의 한 주부가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한 달 살기 실험을 한 걸 다큐프로그램으로 방영한 적도 있을 만큼 헐값의 중국산이 넘쳐난다. 재벌이 하는 대형 할인매장은 이런 중국산 제품으로 돈을 번다. 적어도 언론이라면 현상만 나열할 게 아니라 재벌이 운영하는 유통망이 이런 문제를 걸러 내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해야 한다.
우리 언론은 전후맥락을 설명하지 않고 현상만 나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앙일보가 8일 16면에 <네루-간디 집안 4대째 총리 배출 가물가물>이란 기사를 실었다. 인도의 정치 명문 네루-간디 가문의 4대 총리 배출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내용이다. 중앙일보가 제시한 이유는 ‘지방선거 참패’다. 이번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한 라훌 간디 국민회의당 사무총장이 초대 총리였던 네루의 증손자인데, 선거 패배로 정치적 입지가 크게 위축됐다는 거다. 중앙일보는 잦은 암살에도 40년 집권을 이어 온 이 가문을 중심으로 얘기를 늘어놓지만 오늘날의 인도를 이해하는 데는 어떤 도움도 안 되는 신변잡기일 뿐이다.
우리에게 마하트마 간디는 ‘비폭력 성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간디는 철저한 힌두교 우익을 대표하는 ‘체제 옹호자’라는 맨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였다. 간디는 생의 마지막 시기에 해방된 인도의 종교 화합을 호소하다가 극우 힌두교도에게 암살당했다. 하지만 생애 전체를 놓고 보면 카스트제도를 영원히 유지하기 위해 죽음을 불사한 단식으로 불가촉천민들을 위협하는 등 불가촉천민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 힌두 우익의 삶을 살았다.
간디주의는 인도에서 종교 분열을 일으킨 주역 중 하나였다. 37년 선거 이후 힌두교도에 의해 무슬림이 억압받을 것을 우려한 무슬림연맹의 무하마드 진나가 무슬림을 포용해야 한다고 호소했을 때, 이를 매몰차게 거절해 무슬림연맹을 파키스탄 건국이라는 강경 노선으로 돌아서게 했다. 당시 간디는 민주적 절차를 거쳐 국민회의 의장이 된 찬드라 보세를 자신의 개인적 권위만으로 그 직위를 박탈하고 국민회의 밖으로 야비하게 추방했다. 이때 간디는 네루를 핑계 대면서 진나의 호소를 거부했다.
간디는 비폭력주의자도 아니다. 간디는 1차 세계대전 때 징병관으로 인도 젊은이들을 제국주의 전쟁의 총알받이로 사지에 몰아넣었다. 대동아성전에 조선의 젊은이를 몰아넣은 춘원 이광수나 육당 최남선 같은 인물이었다. 또 간디는 지금도 인도인들의 사랑을 받는 혁명가 바가트 싱을 서둘러 사형시켜 달라고 영국에 요청했고, 국민회의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때때로 대중 폭동을 고의적으로 조장했다.
이처럼 간디는 복잡한 인물이다. 그래서 오늘날 <인도는 울퉁불퉁하다>는 책이 한국에서 나올 정도다. 오늘날 수많은 한국 젊은이와 지식인들이 인도 여행을 떠난다. 수많은 문인들이 인도 체류기를 써서 돈을 번다. 그들은 한결같이 인도에 매료돼 인도를 찬양하지만 그들이 본 인도는 단면일 뿐이다.
언론은 복잡하게 얽힌 현상을 다양하게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 (leejh6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