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

“생활고에 책도 안 산다”

한겨레가 지난 27일 경제면(17면)에 쓴 기사 제목이다. 우리 국민들은 경기침체에다 소득 증가세가 둔화하면서 가구당 책 구입비가 역대 최저치로 떨어져 지난해엔 고작 월평균 2만원가량만 책 사는 데 썼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한 발 더 나갔다. 중앙일보는 같은날 경제면에 쓴 기사에서 “책보다 빵 사는 데 돈 더 썼다”며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책과 빵 구입비의 흐름을 비교했다. 책을 산 돈은 해마다 내려갔고, 빵을 산 돈은 해마다 올라갔다. 동네빵집을 다 몰아내고 파리바게트 같은 재벌 빵집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시기와 일치한다. 이젠 재벌이 가계소비 구조마저 좌우하고 있다는 증거다.

지난 26일 민주통합당이 소득세와 법인세를 인상하는 공약을 내놓자, 보수신문들은 일제히 선거용 포퓰리즘이라고 성토했다. 조·중·동은 나란히 프랑스의 예를 들어 세금 인상 공약을 비난했다. 중앙일보는 27일 경제면(E3면)에서 “세금이 기가 막혀 … 프랑스 부자들 해외로”라는 기사를 실었고, 동아일보는 같은날 국제면(20면)에서 “세금폭탄이 온다, 프랑스 떠나자”라는 제목의 기사로 비꼬았다.

중앙일보는 영민하게도 이 기사에서 현재 프랑스의 소득세가 얼마인지 소개하지도 않았다. 그냥 보수신문 르 피가로의 기사를 인용해 프랑스 사회당의 대권주자가 대선 집권 가능성 때문에 부자들이 벨기에와 스위스로 이주하고 있다고 썼다. 동아일보는 어리석게도 올랑드 사회당 후보의 소득세율 인상 공약을 자세히 소개했다. 연소득 2억2천600만원이 넘는 고소득자의 소득세율을 현행 41%에서 45%로 올린다는 내용이다.

한국의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내놓은 세금 인상 공약은 어느 수준인지 궁금하다. 민주통합당은 연소득 1억5천만원 이상인 고소득자의 소득세를 38%로 인상하자는 거고, 통합진보당은 1억2천만원 이상인 고소득자의 소득세를 40%로 인상하자는 내용이다. 민주통합당의 소득세 인상 공약은 현행 프랑스 세율보다 훨씬 낮고, 통합진보당의 공약이 겨우 현행 프랑스의 소득세 최고세율인 41%에 근접한 40%다. 두 나라의 경제력을 비교하면 고소득자 기준은 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전 세계에서 한국보다 부자들의 세금이 싼 나라가 또 어디 있을까. 10년 전 미국 등으로 탈출 러시를 이루던 한국의 이민자가 최근 역이민으로 귀국하고 있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아무튼 민주통합당이 소득세와 법인세를 인상하겠다니 반가운 소식이지만, 법인세를 역대 어느 정권보다 많이 낮춰 재벌 천국을 만든 게 노무현 정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새누리당 20대 예비후보 손수조가 뜨니, 민주통합당은 27살 비정규직 출신 여성 곽인혜를 내세웠다.(한국일보 27일 5면) 주례여고 학생회장과 이화여대 출신인 손수조보다 경기도 성결대 행정학과 졸업 후 식당 서빙과 공장 알바, 경륜장 매점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곽인혜의 경력이 훨씬 더 가슴에 와 닿는다. 그러나 국민체육공단이 운영하는 경륜과 경마, 경정장에서 매표원으로 일했던 수백명의 비정규 노동자가 이명박 정권 내내 용역들에게 갖은 욕설을 다 들으며 복직을 요구하는 천막농성에 민주통합당이 얼마나 귀를 기울였는지 궁금하다. 경륜장 비정규직 한 명을 국회로 보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모바일 투표 과열로 광주에서 전직 동장의 자살을 불러온 민주통합당의 경선 잡음을 다룬 기사는 팩트 자체가 엇갈리고 있는데도 어떤 언론도 실체적 진실을 잡지 못했다.

지난달 26일 저녁 60대 전직 동장 조모 씨가 투신할 당시 정황을 다룬 일간지 기사는 중요한 사실관계를 혼동하고 있다. 다음날인 27일 한겨레는 1면에 “선관위 들이닥치자 투신한 전직 동장”이라고 했고, 매일경제도 31면에 “선관위 단속 피하다 추락사”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좀 다르게 썼다. 조선일보는 1면에 “선관위 조사 받던 중 투신자살”이라고 제목 달았다. 단속을 피해 달아나다 추락사한 것과 조사 받던 중 투신자살한 것은 많이 다르다. 다른 신문들은 죽은 조씨가 단속을 피해 건물에서 뛰어내렸다고 했지만, 조선일보는 조씨가 10여분 정도 선관위 직원들의 조사를 받다가 화장실 간다고 사라져 투신했다고 한다. 누군가 한쪽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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