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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 | ||
로마 시민들은 식사 때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앞에 놓인 요리를 손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그래서 식탁은 지금처럼 앉아서 먹는 방식이 아니라, 누워서 먹기 편하게 와대를 놓았다. 한 와대엔 3명씩 누웠다 손으로 먹었기에, 수건과 물을 든 노예가 끊임없이 주인과 그의 손님 손을 씻겨줬다. 노예들은 몸의 털을 모조리 없애고 화장을 한 반라로 주인에게 부채질이나 마사지를 하거나 파리를 쫓기도 했다. 배가 부르면 깃털이나 풀뿌리로 목을 간질여서 토해내고 다시 요리를 즐겼다. 남은 음식은 싸서 집으로 가져가는 게 당시 예법이었다.
고대 문명의 최고봉으로 완전한 민주주의를 이뤘다고 평가받는 그리스는 어땠을까.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아테네는 최초의 완전한 대중정부를 형성했다. 그러나 과장은 금물이다. 여성은 공적 활동을 할 수 없었다. 아테네 시민의 아내는 오늘날 이슬람 국가의 여성과 비슷했다. 외국인에겐 시민권이 없었다. 산업은 노예제에 기반하고 소농들도 노예 한두 명을 소유했고, 광산과 공장의 인부, 심지어 경찰도 대부분 노예였다.
아테네 시민들은 꽤 다양한 모습을 갖췄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통치계급이었다. 경제적 민주주의의 출현은 생산된 부의 평등한 분배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착취를 통해 가난한 시민들을 빈곤으로부터 구제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시대에 노예제가 발달하면서 델로스에는 국제 노예시장이 세워졌다. 도시산업은 쇠퇴했고 한때 번성했던 도시들은 쇠락했다. 도시 부르주아지의 구매력은 컸지만 그들의 수는 제한돼 있었고 도시 프롤레타리아트는 점차 빈곤해졌다. 중간계층도 점차 프롤레타리아트로 전락했다.
홍대 앞 빵집 ‘리치몬드’가 문을 닫고 그 자리에 롯데 재벌의 엔제리너스 커피전문점이 들어선다는 소식은 상징적이다.(1월 31일자 한겨레 11면, 중앙일보 2면, 국민일보 13면) 마침 국민들의 거센 비난 여론에 밀려 재벌 딸과 손녀들이 하나 둘씩 먹은 걸 토해낸다는 뉴스와 포개져 묘한 여운을 남겼다.
대부분의 신문은 리치몬드 홍대점 폐점을 “눈물의 폐점”이라 불렀다. 그러나 중앙일보만큼은 “내 빵은 끝나지 않았다”는 리치몬드 권상범 제빵 명장의 미담기사로 둔갑했다. 중앙일보는 재벌과 중소기업의 날선 대립이 드러나지 않게 잘 처리했지만, 그렇다고 진실이 숨겨지는 것은 아니다.
때마침 재벌닷컴이 지난해 연말을 기준으로 한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외식업 진출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표로 제시했다. 삼성계열의 보나비가 외식업 아티제를 운영하고, 현대차계열이 오젠이란 카페업을 하고 있단다. 두 회사는 철수를 결정했지만 여전히 롯데와 CJ가 포숑과 뚜레쥬르란 상표로 빵장사를, 두산이 버거킹으로 아이들 먹거리를 책임지고 있다.
보수신문들도 빵·물티슈·순대사업까지 문어발 뻗는 재벌그룹의 파렴치한 모습을 비난하고 나섰다. 이러다간 60년간 일구어 온 ‘재벌공화국’이 통째로 몰락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의 발로다. 로마나 그리스처럼.
민주통합당이 “대기업 지배구조 바꿀 것”(조선일보 2일 1면)이라고 발표했다. 재벌 계열사 간 순환출자를 순차적으로 해소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단다. 한나라당도 재벌개혁의 일환으로 대기업 집단의 사회적 책임을 담은 입법방안을 검토하고 나섰다. 선거철이 돌아온 모양이다.
조선일보는 “순환출자 금지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곳은 삼성그룹”이라고 지적했다. 과연 민주통합당이 재벌 순환출자를 금지할 수 있을까. 민주통합당의 이번 발표는 아직 당론도 아니다. 당의 경제민주화특위가 논의한 수준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실질적 의미에서 재벌을 개혁했다는 소리를 아직 못 들어 봤다. 김대중 정부는 내내 현대재벌과 함께 했고, 노무현 정부는 시작부터 삼성과 함께 했는데, 그때 그 정치인들이 다시 재벌개혁을 말한다. 뒤에서 재벌은 웃고 있다.
너무 많이 먹어, 더 들어갈 배가 없으면 토해내고 “다시 먹으면 그만”이다. 다 못 먹으면 집에 싸가면 그만이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 (leejh6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