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

지난해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서울대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였다. 2위는 하버드대학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였다. 11월까지 집계였는데, 나꼼수 김어준과 스티브 잡스의 책도 상위권이었다.

김난도 교수류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사례는 많다. 몇년 전 외국책의 제목을 패러디한 <88만원 세대>가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마이클 샌델이 하버드 교수가 아니라 마이애미 대학교수였다면 베스트셀러가 됐을까 의문이라는 한 네티즌의 지적도 있었다. 역시 김난도가 서울대 교수가 아니었다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나는 매년 연말이면 그 해에 읽은 책을 정리한다. 그래서 올해 읽은 최고의 책과 최악의 책을 꼽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가 읽은 2011년의 베스트는 중국총공회가 지은 <중국노동조합운동사>와 정호영의 <인도는 울퉁불퉁하다> 쯤이다. <나, 여성노동자> 1·2권도 좋은 책이었다.

2011년 읽은 최악의 책은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과 <레닌 재장전>이다. 뜬구름 잡는 먹물들의 현학에 신물이 났다. 그 다음 차악의 책은 <아프니까 청춘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쯤이다.

나는 이런 책을 '5년에 10억 벌기 프로젝트'와 같은 처세술 책이라고 본다. 현실에선 남의 일에 한발도 연대하지 않으면서 책 속에서만 ‘정의’를 찾는 미국 자유주의자들의 사이비 정의론에 우리 젊은이들이 물들지 말았으면 한다. 김난도의 책 역시 마찬가지다. 2011년을 20대로 장사해 먹은 김난도는 2012년엔 40대를 상대로 책장사에 나섰다. 결혼생활·은퇴 준비·자녀 걱정…. 수많은 난제를 안고 사는 한국의 40대 중년의 삶을 위한 에세이를 집필 중이란다.(한국일보 4일 24면)

20대든, 40대든 간에 김난도의 책만으론 갇힌 현실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사회과학자들이 만연한 비정규직을 피하지 말고 “정규직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삼으라”(조선일보 4일 2면)고 사기치지만, 현실에서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가는 통로가 아니라 늪이 된 지 오래다. 노동연구원 연구위원 같은 이들은 그래도 논리로 무장한 사이비 과학이라도 들이대면서 청춘들을 위로하지만 김난도는 그렇지 않다. 조선일보 칼럼니스트 김난도에게 얻을 것은 없다.

큰일은 늘 작고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다. 보름 만에 MB정권 최대 악재로 부각한 방송예술진흥원 이사장의 240억원대 비리설은 지난달 22일 한국일보 16면에 단 4문장짜리 1단 기사로부터 출발했다. 비리를 폭로하겠다며 이사장을 협박해 10억원을 뜯어낸 방송예술진흥원 직원의 구속기사였다. 방송예술진흥원발 뇌관은 단순한 대형 악재가 아니다. 이를 시작으로 사방에서 터져 나와 정권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나는 이 1단짜리 기사를 보고 MB의 낙하산 인사가 일개 직원에게 10억원을 뜯길 정도면 자신은 얼마나 해 먹었을까. 이런 단순한 발상이 수만 권의 처세술 책보다 낫다.

김난도가 아무리 청춘을 위로해도 ‘대기업이 정규직 전환에 더 인색’한 승자독식주의는 날로 기승을 부린다.(조선일보 4일 12면) 1억원 넘는 연봉자가 28만명으로 전년 대비 42%나 급증했는데, 샐러리맨 전체의 연봉은 5년 전보다 줄어든 이 기이한 사회(한겨레 12월23일 17면)를 어떻게 해석할까.

대통령이 한 시중은행에 고졸 신규입사자들과 면담이라도 할라치면 너도나도 앞다퉈 고졸 채용을 늘리겠다고 말은 했지만 은행권은 올해 고졸 채용을 지난해에 비해 17% 줄인단다.(한국일보 12월 23일 21면)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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