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민주노총 미조직
비정규실장

송경동의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간다’가 나왔다.

출판사부터 맘에 안 든다. ‘실천문학사’라니. 올 봄까지 그 출판사 사장을 지낸 먹물 소설가 김영현이 90년대 초 포스터 모더니즘 논쟁으로 얼마나 많은 운동가를 전선에서 이탈시켰는지 더 물어 무엇하리. 당시 김영현은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를 휘둘러 대면서 무너진 사회주의의 이상을 조롱하듯 부관참시하며 숱한 부역으로 피를 뿌렸다. 마치 열린우리당이, 민주당이, 국민참여당이, 안철수가, 박경철이, 박원순이 그러하듯. 늘 비슷한 척하며 접근해 끝에 가선 변신했다.

그래도 탓할 수 없다. 떠돌이 노동자 송경동에게 2001년 ‘시인’ 명찰을 달아 준 곳이 ‘실천문학’이었으니, 산문집을 내는 출판사로 삼을 만하다.

희망버스 일을 도우며 송경동과 부대낀 몇 달은 '다르다와 틀리다'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그 사이 어디쯤 ‘닮았다’도 있었다.

다 읽지 않으면 ‘꿈꾸는 자 잡혀간다’는 제목은 희망버스 구속자 송경동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목은 자기 얘기가 아니다. 국가보안법으로 잡힌 작가 이시우의 얘기다. 타인으로 열린 송경동의 확장된 시선이 좋다.

산문집은 ‘희망버스’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1·2부는 어린 송경동의 속살이다. 제수씨 배를 걷어차던 깡패 큰아버지, 가난한 시골 장사치의 세치 처세술과 세상에 대한 굴종밖에 없던 아버지. 남편을 찾으러 나가 가끔 머리채가 질질 끌리며 펑펑 나자빠지며 저 멀리 겨울 밤길을 호곡하며 돌아오던 어머니. 잡부 숙소에서 시작한 서울생활과 바퀴벌레와 쥐가 들끓는 지하방.

빈속으로 나온 건설현장에서 “새참을 먹는 오전 9시까지가 가장 힘들다”는 표현은 당해 본 사람만 안다. 여천공단의 배관공 송경동은 “파이프를 타고 원숭이처럼 달려 내려왔다”고 했다. 나도 철골만 앙상한 20미터 지붕에서 반나절을 보내고 점심 먹으러, 반코팅 목장갑 2개에 의지해 에이치빔을 타고 2초 만에 지상에 내려올 때의 쾌감을 안다. 아버지가 날린 크리스털 재떨이에 머리를 맞은 어머니를 업고 뛰었던 내 어린 시절과 겹친다.

이렇게 1·2부는 덕지덕지 말라붙은 가난과 열등감으로 스스로를 학대하던 유년의 송경동을 만난다. 팬시업체 창고정리 하던 비정규직 송경동은 “생의 모든 용기를 끌어올려 그녀의 이마에 가만히 입을 맞추었다”고 했다. 송경동이 생의 모든 용기를 끌어올려 다다르고 싶었던 곳은 그녀의 입술이 아니라 비틀어진 유년이었으리라.

3·4부는 수많은 투쟁현장으로 다가서는 송경동을 만난다. 동희오토·콜트콜텍·하중근·평택 대추리·삼성반도체 백혈병….

이 부분은 사실 특별할 것도 없다. 이 책을 읽는 이라면 대부분 함께했을 터이니. 중간중간에 나오는 닥트공 최씨와 노동자 시인 조영관과 박영근이 보인다.

5부에 와서야 ‘희망버스’다. 송경동은 2차 희망버스를 준비하면서 “크레인의 의미를 담아 85대를 잠시 고민하다, 거기에 100대가 더 붙은 185대를 제안했다. 김진숙이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스스로 문을 잠가 버린 지 185일이 되는 날이었다.” 난 원래 뭔가 기념하는 것에 목을 매는 사람들이 싫다. 여러 번 송경동과 부딪쳤다.

1920년대 말 중국혁명은 간조기였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은 정세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했다. 1929년 5·30 기념일에 상해시위를 거행해 100명이 체포돼 혁명역량은 큰 손실을 입었다. 중국공산당은 이 모험주의를 위대한 성과라고 잘못 평가했다. 좌익기회주의자들은 각종 기념일마다 국민당 정부를 반대하는 파업 등 모험주의 활동을 전개했다. 그것도 너무 자주 남발하면서. 1932년 2월과 3월에 각각 2번, 5월에 5·1, 5·3, 5·9, 5·30까지. (중국 노동조합 운동사, 중국총공회, 1999)

나는 간조기의 모험주의도 동의한다. 모험주의이기 이전에 송경동의 표현처럼 “문제해결의 부담이 아니라 연대가 필요한 곳에 연대하러 가는데 무엇이 더 필요하냐”는 것이다. 그러나 날짜 세는 기념일은 영웅주의와 맞닿아 있다. 그것이 즉흥적 결론이라면 더더욱. 그래서 4~5차로 넘어갈 때 복도에 서서 1시간을 싸웠다. 그러나 ‘다름’이 이상한 게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게 달랐던 그가 산문집 ‘작가의 말’에서 “지금 내가 혹독하게 갇혀 있는 감옥은 깨끗하게 털어 내버리지 못한 뿌리 깊은 자본의 문화, 가부장제의 문화”라고 했다. 같은 숙제를 풀고 있다. 그만큼 닮아 가면서. 누군들 마찬가지다.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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