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조지아주 플레인즈. 수도 워싱턴DC에서 1천킬로미터 떨어진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촌구석. 마을에 단 하나 밖에 없는 공중전화. 전화명단이라야 전부 1쪽 반. 그나마 절반 이상이 모두 카터 집안이다. “지미 카터·빌리 카터·얼 카터·휴 카터…” 한국의 면 소재지만도 못하다. 인구라야 백인이 2천500여명, 흑인이 350여명. 마을의 번화가엔 8채의 잡화상만 있던 미국 남부의 궁촌에서 제39대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가 태어났다.
조지아주 주도 애틀랜타에서 남으로 200킬로미터.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타라(Tara) 농장이 있다. 남북전쟁 당시 남군과 북군은 서로 쫓고 쫓기면서 타라 평원의 끝자락 앤더스빌과 삼터 요새에서 수많은 피를 흘렸다. 카터가 태어난 플레인즈에서 불과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1만명의 북군 포로가 떼죽음을 당한 곳이다. 카터의 5대조는 1830년께 플레인즈에 처음 들어왔다.
미국 대학입학시험(SAT) 준비생이나 외울 법한 캐캐묵은 얘기다. 그러나 70년대 말에는 달랐다. 한국일보 미국 특파원 조세형 기자는 77년 초 미국의 새 대통령을 이해하기 위해 카터의 고향까지 달려가 취재했다. 당시 조세형은 메이저 신문의 외신부장을 넘어 편집국장급 기자였다. 적어도 70년대는 한국의 대기자는 미국의 낯선 시골 촌구석까지 더듬어야 했을 만큼 절박했다. 미국의 이해가 곧 한국의 이해였고, 미국의 정책이 곧 한국의 생존을 좌우했으니까.
그로부터 한 세대를 건너뛰어 34년이 지난 지금도 조지아주, 애틀랜타를 주워섬기는 기자들이 한국엔 수두룩하다.“미국 남동부 조지아주 주도 애틀랜타에서 앨라배마주의 주도 몽고메리까지 85번 고속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한국 기업들의 간판들을 잇달아 볼 수 있다.”(경향신문 14일 20면) “현대차의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 일하는 애슐리(30)양은 입사 후 달라진 게 많습니다.”(한국일보 14일 19면)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의 임영득 법인장(부사장)은…”(한겨레 14일 15면) 이밖에도 서울신문·머니투데이 등 수많은 신문에 난데없이 ‘앨라배마’가 부활했다.
이들 기사의 발행일은 한결같이 지난 14일이다. 취재 시점도 한결같이 지난 7~9일이다. 이 쯤 되면 짐작이 간다. 재벌 회사가 경제부 기자들에게 기내식을 대접한 게다. 수십 명의 기자를 비행기로 실어다가 조지아주의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과 그 옆 기아차 웨스트포인트 공장에 이어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의 현대차 디자인센터까지 순방시켰다. 그것도 떼거리로. 신차를 소개하거나 생산설비를 개편하는 중대한 일이 있을 때 재벌사가 홍보차원에서 이런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엔 홍보 시점이 매우 불경하다. 민초들이 한미FTA 저지를 위해 촉각을 곧추세울 시점에 꼭 가야했던가. 언론 스스로 한미FTA 최대 수혜주라 부르는 한국의 자동차 산업을 위해 쓸 지면이 있으면 피해 입을 산업을 돌아봐야 할 시점이었다. 마치 자랑이라도 되는 듯 무노조에, 고강도 노동강도를 떠벌리는 현대차 미국 공장 간부들의 원색적 목소리를 담을 만큼 타락했단 말인가.
지난해 충남의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밤에는 잠 좀 자자”라는 구호로 파업에 들어가면서 자동차 공장의 주야맞교대 근무가 얼마나 나쁜 것인지 알렸다. 경향도 여기에 상당부분 공감했다. 그러나 경향신문의 14일 미국발 기사 제목은 ‘‘K5 불티’ 기아차 미 조지아 공장 24시간 가동’이었다. 불야성을 이루며 24시간 돌아가는 미국 공장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경향은 다시 23일자 26면엔 ‘“돈벌이 위한 노동이 삶의 전부가 돼버렸다”’는 제목으로 같은 현대차 노동자를 다룬 박태주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의 보고서를 보도했다. 박 교수는 현대차의 장시간 노동이 노동자의 가정과 여가생활 자체를 파괴하고 있다고 지적했고 경향도 그 취지에 부응했다. 앞뒤가 안 맞다.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 (leejh6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