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민주노총 미조직
비정규실장

서울 강남·서초·송파·분당은 한국 최대의 땅값 전쟁터다. 졸부들은 강남3구와 성남 분당에 환장한다. 분당은 강제 이주된 철거민들이 모여 만든 마을이다. 정부는 66년 서울의 무허가 건물 거주자 50만명을 강제로 이주시키려고 지금의 성남에 택지를 조성했다. 69년 5월 이주 철거민 154명을 트럭에 실어다 버린 곳이 이곳이다. 무모한 ‘선입주 후건설’ 이주계획은 철거민들에게 천막생활을 강요했다. 70년 여름 전염병까지 돌아 수백 명이 죽었다. 결국 71년 8월10일 ‘광주 대단지 민중봉기’가 일어났다.

강남3구도 60년대까지 뽕밭이었다. 저들은 조국 근대화라고 부르지만 강남과 분당은 개발독재의 슬픈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땅이다. 사람 살기도 나쁘다. 8학군을 따라 고급 입시학원이 즐비하지만 바로 그 옆엔 연예인들이 들락거리는 룸살롱과 나이트클럽도 줄을 섰다.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가 얼굴을 매만진 곳도 거기라지 않는가. 이처럼 강남에는 한국사회의 온갖 엽기적 퇴폐와 저질문화가 늘어섰다.

나 같아도 강남3구에 사느니 북한산 밑 정릉이나 도봉산 밑 우이동에 살고 싶다. 풍수지리로도 강남은 배산임수가 아니다. 강남에서 한강 물을 바라보고 집을 앉히면 북향이 된다. 집 뒤로 비치는 햇살은 산에 막혀 옛날 같으면 얼음이 어는 ‘냉정골’이라 불렀을 땅이다.

우리 지리학으로 배산임수에 딱 들어맞는 서울 땅은 용산 아래 이태원동과 한남동이다. 남향집을 짓고 따사로운 햇살과 강물을 동시에 볼 수 있으니.

그래서 용산엔 한국 최고의 부자들이 몰려 산다. 이건희 회장의 집부터 시작해 남산 하얏트호텔 아래쪽에서 유엔빌리지까지 구본무 LG 회장·정몽구 현대차 회장·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이명희 신세계 회장·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집이 연이어 있다. 유엔빌리지엔 우리를 1년 가까이 애먹였던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도 산다.

이 땅은 원래 구한말 일제가 조선주둔군사령부를 용산에 설치하면서 일본 장성들과 자본가들이 살던 곳이다. 일제는 서울의 가장 좋은 땅에 뿌리를 박았다. 용산 땅은 19세기 말 일제가 들어서 해방까지 50년을 지배했고, 이후 50년을 미군이 장악했다. 물가의 낮은 습지엔 조선 빈민들이 살면서 늘 물난리에 시달렸지만 언덕 위의 제국주의자들 집은 늘 평온했다. 그래서 재외공관들도 상당수 들어서 있다.

최근 유엔빌리지 건너편 옛 단국대 터에 고급주택가 ‘한남더힐’이 들어섰다. 박세창 금호 전무와 박인원 두산 상무, 현정은 회장의 딸 정지이 전무도 한남더힐에 신혼집을 마련했다. 사람들은 뜨는 재벌타운이라고 부른다.(매일경제 9일 13면)

재벌이 많이 모여 살다 보니 한남동엔 일조권·조망권을 놓고 분쟁도 자주 일어난다. 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 한성주와 유명 건축가 이창하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기 집의 조망권과 일조권을 놓고 석 달째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조선일보 14일 13면) 이씨가 2층 단독주택인 한씨 집 바로 아래에 지상 3층 건물을 짓기 시작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2002년엔 신춘호 농심 회장이 이건희 회장의 이태원동 새집 건축공사로 인한 소음과 조망권 피해 때문에 송사를 걸어 삼성과 농심가가 3년 동안 갈등하다 어렵게 화해한 적도 있다.

자살한 여배우 정다빈이 주연한 MBC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의 무대도 한남동이었다. 2003년 선보인 옥탑방 고양이는 겉으론 파격적인 혼전동거를 다뤄 화제였지만, 속으론 옥탑방에 갇힌 우울한 청춘들의 일상을 구김살 없이 그려내 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즐비한 재벌집 옆 지질한 옥탑방 인생이 대부분 서울 시민들의 모습이다. 강남의 부촌 옆에 불에 탄 포이동이 있듯, 이렇게 양극화는 동전의 양면처럼 맞붙어 있다. 1%의 한남동이 99%의 포이동을 이길 순 없다.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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