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미조직
비정규실장

박재규 경남대 총장은 31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미국 워싱턴DC 우드로윌슨센터에서 한반도 냉전사와 관련해 ‘비평구술사 회의 및 워싱턴 포럼’을 개최한다.(매일경제 26일자 37면)

비평구술사 회의는 70년대 중반의 한반도 국제냉전사를 집중 조명하는 회의로, 한국과 미국측의 당시 정책 결정라인에 있었던 인사들이 참여해 증언하고 관련 문서집과 학자들의 분석을 통해 역사적 사실의 재구성을 시도할 예정이다.(한국대학신문 24일자)

박재규 총장은 국민의 정부 때 통일원 장관으로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의 추진위원장이었다. 미국에서 대학을 나와 73년 경남대 교수를 시작으로 남북문제를 주로 다루는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80년대부터 지금까지는 줄곧 경남대 총장이다. 노무현 정권 땐 윤이상 평화재단 이사장과 대통령 통일고문으로 활약했다. 박 총장은 진보는 아니라도 양심적 학자 정도는 된다.

72년 유신선포 직후의 한국 상황을 다룬 책 ‘한국으로부터의 통신’(한울림, 1985.1)의 74년 1월치 글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이후락이 사라진 뒤 박종규 경호실장은 박정희의 제1 측근이 됐다. 박종규는 마산 출신으로 마산 자유항의 절반을 지배한다. 일본인 투자는 박종규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지방 전기·신문·라디오 등 모두가 그의 영향에 있다. 최근 마산대를 인수해 이름을 경남대로 바꿨다. 뉴욕에서 장사하던 동생을 불러와 학장에 앉혔다. 미국과 일본 학자들을 초청해 한국의 어용학자와 함께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박 총장의 형 박종규는 박정희 정권의 경호실장으로 별명이 ‘피스톨 박’이었다. 그만큼 사격에 능했다. 그래서 창원시가 2018년 세계사격선수권대회 유치위원회에 명예위원장으로 박 총장을 모셨다. 지난해엔 박종규의 아들이 “삼촌 박재규가 대학을 빼앗았다”고 주장했다가 명예훼손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박 총장이 경남대로 온 73년 겨울 한국의 상황은 그의 형 박종규와 무관하지 않다.

일본인 투자업체가 93%를 점했던 마산 수출자유지역은 생지옥이었다. 5만명의 여성노동자가 하루 10~12시간 휴일도 없이 일하면서도 월평균 1만3천원을 받았다. 일급제에 고용계약도 없어 가차 없는 해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73년 11월 초 일본인 회사의 여성 노동자 1천명이 해고에 항의해 곤봉을 들고 일본인 관리자를 습격했다. 일본인은 도망 다니고, 중앙정보부 요원과 경찰이 동원돼 여성 노동자들을 진압했다.

경남 창원에선 일본공장이 들어가야 할 공업단지 건설을 반대하는 농민들이 불도저 앞을 가로막았다. 박 대통령의 출신지 구미공단에선 일본인 기술자와 한국인 노동자 사이에 충돌이 있었다. 곤봉을 가진 200명의 한국 노동자가 일본인 기술자들의 숙소인 아파트를 습격했다. 구미에선 한-일 간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영등포 한국모방 1천200여명의 여성노동자는 어용노조 지부장을 쫓아냈다. 새 지부장을 뽑았지만 정부의 탄압이 심해졌다. 새 지부장은 회사 안에서 사장에게 집단구타를 당했다. 이웃의 한영섬유에선 3년 전인 71년 공장장이 폭력배를 매수해 민주노조를 외치는 노동자 김진수(당시 24세)씨를 드라이버로 찔러 죽였다. 그러나 사장과 공장장은 3년이 지난 74년에도 구속되지 않았다.

70년대 노조 민주화 투쟁의 소용돌이 속에 한국노총은 74년 1월21일 신문에 “일부 종교인의 직책을 망각한 노동조건 침해행위를 엄중히 경고하면서 … 우리의 조직력을 동원해 이를 분쇄한다는 노총의 결의를 분명히 한다”는 반박 공고문을 실었다.

이번에 박 총장이 개최한 포럼 장소 우드로윌슨센터도 노동자와 관련 깊다. 1919년 미 서부 펜실베니아 철강공장에는 주 6일, 하루 12시간 일하는 10만명의 노동자가 있었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과 어용 미국노동연맹 의장은 이들에게 파업을 연기하라고 압박했다. 그러나 철강 노동자들은 굴하지 않았다. 1919년 9월 10만 조합원과 25만명의 비조합원까지 파업에 가세했다. 철강회사는 파업을 깨려고 악명 높은 셔먼용역회사를 동원해 “세르비아인과 이탈리아인 노동자를 최대한 이간질하라”고 지시했다. 결국 파업은 무력 앞에 깨졌다. 윌슨 대통령이 임명한 파머 법무장관은 노동자 탄압에 앞장서 이름을 드높였다.

지금 우리 옆에서 우리와 함께 투쟁하는 척하는 사람들이 본질적으로는 우리의 적일 수도 있다.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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