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차 사태는 이같은 이유에서 3년전 정리해고 법제화 후 처음으로 대규모 정리해고를 강행하려고 했던 현대자동차의 사례가 비교가 되고 있다. 그러나 두 사례의 차이는 크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 대우차와 현대차의 정리해고, 시작은 닮음 꼴, 결과는 다른 꼴
대우자동차와 현대자동차의 초기 정리해고 규모는 엇비슷한 출발을 보이고 있다. 대우차는 지난해 12월초 6,884명의 감원계획을 발표, 희망퇴직, 비정규직 정리를 통해 인원을 줄인 후 1월 16일 2,794명의 정리해고 계획서를 제출, 한달뒤 1,750명의 정리해고를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는 초기 경영혁신위를 통해 강제적인 인력감축 없는 구조조정 방안을 요구해왔으며, 2월8일 1년간 순환유급휴직제를, 16일 희망퇴직 수용, 3교대 순환무급휴직를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리고 노조는 파업에 돌입한 이후 부평공장 인근 산곡동성당에서 19일째 농성 중이다.
반면 98년 현대차는 98년 5월 8,189명을 정리해고 계획 발표 후, 7월16일 3,578명의 정리해고 명단을 발표하면서 노조가 즉각 공장점거 농성에 돌입했다. 그리고 36일간의 노-사-정간의 밀고 당기는 교섭 끝에 △고용조정 대상자 1,538명 중 277명 정리해고 △1,261명 1년휴직(무급), 6개월 재교육 훈련 △노조 기본급 2% 출연 및 노사 고용안정기금 마련으로 휴직임금 지급 △정리해고자 위로금 7∼9개월 △무분규 선언 △정리해고 대상 식당 노조운영 등의 결과로 막을 내렸고, 정리해고 대상자 선정기준도 노사협의를 기본으로 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휴직자들은 모두 현장으로 복귀했고, 정리해고자들도 투쟁 끝에 모두 복직됐다.
* 왜 이런 차이가 나왔나?
두 회사의 정리해고 진행과정은 노-사-정의 대응방식에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 경영 상태의 차이 = 당시 경영상태가 다르다. 대우차는 99년 8월 워크아웃이 결정된 이후 꾸준히 해외매각을 추진해왔으나, 지난해 포드자동차로의 매각 실패, 현재까지 GM에의 매각도 불투명한 상태에 와있다.
특히 대우차의 딜레마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부실상태에 있다. 대우차의 부채는 18조2,000억원에 이르고, 워크아웃 이후 최근까지 2조4,000억원 이상을 쏟아부었다. 또한 앞으로 채권단은 상반기 중 7,300억여원을 추가로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대우차는 지난 얼마전 법정관리를 앞두고 벌인 회계법인 실사 결과 대우차 존속가치로 3조7,579억원이 산정됐을 뿐이다.
반면 현대자동차는 회사가 망할 정도의 위기는 아니었다. 98년 현대자동차는 IMF 사태 이후 급격한 자동차 내수시장의 위축에 따라 공장가동률이 40%대로 떨어지는 경영상의 위기를 맞았다. 당시 회사는 가동률 하락에 따른 잉여인력을 적게 잡아 40%인 1만8,730명에 달한다고 보았고, 결국 이 중 1만여명을 희망퇴직, 정리해고 등 여러 방법을 통해 고용조정했다. 이에 대해 노조는 당시 일시적인 내수시장의 위축일 뿐이라는 입장을 보였고, 결국 IMF 외환위기의 터널을 빠져나 온 다음해부터는 휴직자들을 조기 리콜했다.
▶ 정부의 엇갈린 대응 = 정부의 대응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대우차노조가 지난해말 부도를 전후해서 줄기차게 정부, 채권단, 회사, 노조 등 4자기구 구성을 요구해온 바 있고, 구조조정 동의서 제출 당시 회사측은 4자기구 구성에 합의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노조의 파업 이후 지난 4일 노동부 김호진 장관이 처음으로 농성장을 방문했으나 "노조가 (7일 출근저지를) 참아달라"는 '당부'에 머물러 '면피성 방문'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반면 현대차의 경우는 농성이 장기화되고 공권력 투입 임박설이 흘러나오는 등 사태가 악화되자 정부가 발벗고 나서기 시작했다. 8월16일 당시 안영수 노동부 차관이 방문한 이후, 다음날 당시 이기호 장관이 노사정 대표자들 자리를 마련하면서 '강경진압' 보다는 '협상타결'로 방향을 가닥을 잡았다. 이후 국민회의(구 민주당)에서 중재단(단장 노무현)을 18일 울산으로 보내 중재에 나섰고 이기호 장관도 협상에 적극 나서 결국 24일 36일만에 '대타협'을 이뤄낼 수 있었다.
▶ 노조의 조직력의 차이 = 이번 대우차 투쟁이 난항을 겪는 가장 큰 큰 이유로 대우차 자체 동력이 꼽히고 있다. 대우차노조는 정리해고 통보를 앞두고 지난달 1일부터 파상파업에 돌입하는 등 강도 높은 투쟁을 전개했으나 참여도는 저조했다.
실제 노조의 지도력은 몇가지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노조는 정리해고 당일까지도 전직 위원장 및 현장조직의 입장을 모으지 못해 노조의 최종제시안을 오후 늦게 내놨고, 결국은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이후 파업에 돌입한 노조는 분노가 최고조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본 19일까지도 조합원 600여명 이상을 모으기가 어려웠다. 가족들의 동참이 일부 원동력이 됐으나, 현 집행부의 가족뿐이라는 한계를 보여줬다. 게다가 정리해고가 부평공장에만 집중돼있다 보니 군산, 창원공장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에 역부족인 모습도 보이고 있다.
반면 현대차가 36일을 버텼던 것은 마지막까지 조합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지적이다. 36일간 농성장에는 4,500∼6,000명의 인원이 꾸준히 모였고, 2,500여명 규모는 꼭 철야농성에 합류했다. 가족들도 250∼300여명 규모가 늘 철야농성에 참여해왔다. 또한 정갑득, 윤성근, 이헌구 전직 위원장은 높이 50m의 주철 주조공장 굴뚝에 올라가 정리해고 철회 촉구 철야농성에 들어가는 등 조직은 달라도 집행부와 함께 했다. 반면 이들 전직위원장 및 소속 현장조직은 집행부가 정리해고를 받아들이자 "인정할 수 없다"며 냉정하게 비판을 가했다.
* 대우차와 현대차 정리해고가 주는 시사점
대우차와 현대차의 정리해고 반대투쟁은 출발은 비슷하지만 결과는 아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서로의 사례에서 현재의 대우차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먼저 현대차와 대우차의 경우를 보면 정리해고의 문제는 일차적으로 단위사업장 노조, 즉 해당노조가 중심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업별노조체제하에서 상급단체의 역할도 중요하긴 하지만 더 일차적으로는 단위노조가 얼마나 문제해결의 동력을 갖고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대우차노조에게는 노조의 지도력과 조직력 회복이 더 적극적인 해법을 모색할 수 있는 전제조건임을 말해주고 있다.
현대차나 대우차의 정리해고 같은 국가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사안에 대해서는 노사정의 협상이 중요하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현대차의 경우 초반에 회사측의 일방적인 정리해고 통보로 노조의 더 큰 반발을 불러왔고, 결국은 한달이 넘는 파업 끝에 정리해고 규모를 대폭 감축할 수밖에 없었다. 되돌아보면 현대차가 처음부터 협상을 통해 방향을 찾았더라면 회사측이 집계한 1조6,414억원의 피해액을 훨씬 줄였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실제로 노조 파업돌입 이후 정부여당까지 적극적으로 나서 협상을 통한 사태해결을 위해 노력을 하면서 해법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돌이켜 보면 노사정간의 이해를 조정하기 위한 협상이 실제로 거래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대우차노조와 회사간의 협상에서 노조가 제시한 희망퇴직안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고 정리해고가 단행된 것은 노조와 민주노총의 더 강한 반발을 불러오는 한 원인이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도 노조는 "도대체 왜 노조안을 검토하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대우차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만큼 이후 처리 과정에서 더 큰 국가적 손실을 막기 위해서 정부와 회사측의 협상을 통한 해법찾기가 더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