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시행이 산별노조를 강화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윤진호 인하대 교수(경제학부)는 지난 25일 오후 충주 건설공제조합 건설경영연수원에서 열린 보건의료노조 전국 현장간부 전진대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윤진호 교수는 이날 ‘외국사례를 통해 본 복수노조 제도와 한국의 노동조합에 대한 시사점’ 주제발표를 통해 “복수노조 시대에 사용자는 가능하면 친사용자 노조를 육성하고 반사용자 노조를 탄압하려고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이러한 사용자의 공세를 기업별노조가 막기에는 힘에 부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 교수는 “산별노조가 가진 전국적인 정치적 영향력이나 투쟁력, 재정과 인력의 집중을 통해 기업별·직종별 조직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며 “더 나아가 기존 조직의 보호에 급급하지 않고 신규 조직화할 수 있는 것이 산별노조의 최대 강점”이라고 말했다.

정규직·비정규직 구분 없이 산업 내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화하고 임금과 노동조건 격차를 완화한다면 산별노조로서 강력한 투쟁력과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본, 기업별노조 체제하 복수노조 사례

이미 복수노조를 시행하고 있는 외국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 준다. 윤 교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어떤 형태로든 복수노조 설립이 가능한 일본의 경우 2008년 기준으로 기업 내에 복수노조가 있는 비율은 13.2%다. 업종별로는 운수업·정보통신·교육학습·금융보험업 순으로 복수노조 비율이 높았다.
윤 교수는 “일본에서는 이론적으로는 복수노조 설립이 자유롭지만 기업별노조 형태가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소수노조는 기업 내에서 생존하기 어려운 조건”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은 자율교섭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다수파 노조의 교섭내용이 다른 노조에 거의 그대로 적용돼 소수노조의 교섭의 실효성이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 교수는 “일본 사례의 시사점은 복수노조 제도하에서 기업별노조가 취약하다는 것”이라며 “산별노조의 이점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50~60년대 노사협조주의적 성향의 조합원들에 의해 노조가 분열되면서 ‘전투적 노조의 파업→회사의 강경대응→투쟁 장기화→온건한 제2노조 설립→사용자의 제2노조 지원→파업 패배→제1노조의 약화 또는 소수노조 잔존’이라는 전형적인 패턴이 나타났다. 산별노조운동도 붕괴됐다.

반면에 일본적십자사의 경우 투쟁적인 제1노조가 그대로 유지되기도 했다. 윤 교수는 "일본적십자사노조는 기업별노조라 하더라도 조합원의 단결력과 투쟁력에 의해 제2노조와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보건의료산업 노조 경쟁 치열한 미국

역시 복수노조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노조 간 경쟁이 가장 치열한 산업은 보건의료산업이다. 보건의료 분야는 성장산업인 데다 비교적 고용이 안정돼 있기 때문이다. 윤 교수는 “미국의 경우 이론적으로는 복수노조가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는 거의 없다”며 “그러나 사업장 밖에서는 노조 간 경쟁이 치열하다”고 밝혔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건의료 관련 노조는 서비스노조(SEIU)와 전미간호사연대(NNU)다. SEIU는 1921년 창립 당시 빌딩관리노조에서 시작해 50년대에 보건의료산업 조직화로 방향을 전환했다. 보건의료산업의 모든 직종을 조직대상으로 하는 산별노조다. 보건의료 분야 조합원은 90만명에 이른다.

NNU는 캘리포니아간호사협회(CNA)가 모태다. CNA는 1903년 미국간호사협회(ANA)의 캘리포니아주 협회조직으로 탄생했다. 95년 ANA를 탈퇴해 간호사노조로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급속하게 조직을 확대했다. 95년 당시 1만7천여명에 이르던 조합원이 2009년 8만5천여명으로 증가했다. CNA는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다른 주의 간호사노조와 연계해 2009년 12월 전국적인 간호사 단일노조인 NNU를 만들었다. NNU는 SEIU와는 달리 간호사만을 조직대상으로 한다. 의료보험 개혁과 간호사 인력 문제 해결 등을 주요 활동 목표로 삼고 있다.

미국은 교섭단위당 1개 노조만 단체교섭권을 갖는 배타적 교섭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투표를 통해 1위를 한 노조만 교섭권을 갖는 방식이다. 윤 교수는 “미국에서도 배타적 교섭제도로 인해 노동자 간 연대 저해 등 폐해가 나타나고 있다”며 “미국 내에서도 자율교섭 전환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이어 “복수노조는 단결의 자유원칙에 비춰 당연히 시행해야 하지만 문제는 교섭창구를 단일화한 배타적 교섭제”라며 “자율교섭제로의 개혁을 위해 정치·사회적으로 이슈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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