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이자와 배당 등 금융소득만으로 연간 4천만원 넘게 번 사람이 5만599명으로 1년 전 4만8천545명보다 2천54명 늘었다. 연리 4%로 해도 집과 부동산을 빼고 예금만 최소 10억원이 있어야 가능하다. 부자감세에 미친 이명박 정부에선 이런 불로소득자가 느는 게 당연하다.

대표적 불로소득자가 재벌 2세와 3세다. 신격호 롯데 회장의 외손녀 장선윤씨가 빵·과자·와인을 제조·수입·판매하는 식품업체를 설립했다고 일간신문이 지난 5일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장씨의 사진까지 실었다. 참 한심한 경제면이다. 71년생인 장씨는 97년 20대 때 롯데쇼핑 해외상품팀 바이어로 들어와 서른을 넘기자마자 롯데백화점 해외명품팀장이 됐고 34살엔 이사가 됐다. 2008년 상무로 물러난 뒤 지금은 롯데호텔 자문(고문)이다.

외할아버지 신격호 회장은 롯데호텔 4천500여 전 직원에게 영문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선물했다고 동아일보가 5일 경제면에 보도했다. 신격호 회장은 40년대 초 일본에서 신문팔이와 우유배달을 하며 주경야독할 때 문학에 심취했다. 괴테의 이 소설에 빠져 주인공 베르테르가 사랑하던 여인 ‘샤롯데’에서 그룹의 이름을 따왔다. 독일 중부의 조그만 도시 베즐너에 가면 베르테르가 말을 타고 드나들었던 롯데의 집이 아직도 있다.

식민지 수탈의 아성이던 수풍댐과 장진댐·흥남질소비료공장을 소유했던 일본인 노부치가 36년에 지은 게 반도호텔이다. 이렇게 식민지 경성의 온갖 친일파가 들락거리던 반도호텔은 롯데그룹에 팔려 79년 같은 자리에 38층의 롯데호텔이 들어섰다.
 
롯데그룹은 2000년 롯데호텔노조의 파업을 파괴하고 결국엔 그 노조마저 씨를 말렸다. 2004년엔 부산 롯데백화점 캐셔들의 해고투쟁을 파괴했다. 높고 시설 화려하다고 다 유명 호텔이 되는 건 아니다. 영국 런던의 카놋이나 브라운의 명성은 화려함에 있지 않다. 후미진 구석에 100년 이상 된 낡은 건물로도 국제적으로 사랑받는 많은 호텔들은 최소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안다.

부자들은 원래 천민재벌이라서 그런다지만 지식인도 마찬가지다. 3일자 동아일보 27면엔 소설가 신경숙이 뉴욕타임스에 천안함 사건의 소회를 담은 기고를 했다고 큼직하게 보도했다.

78년 15살에 서울로 올라와 구로3공단 전철역 옆 37가구가 붙어사는 닭장집의 외딴 방에서 여러 식구와 엉켜 살던 신경숙은 공단 입구의 직업훈련원에서 한 달 교육받은 뒤 동남전기에 취직했다. 스테레오 생산부 A라인 1번. 공중에 매달려 있는 에어드라이버를 당겨 합성수지판에 나사 7개를 박았다. 영등포여고 산업체특별학급에 다녔다.

산업체학교에서 반성문을 잘 써 “너 소설 쓰는 게 어떻겠니”라는 얘기를 들었고, 컨베이어벨트 아래에서 소설을 펼쳐 놓고 지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베껴 쓰는 악착같은 문학수업을 시작했다. 22살에 등단했으나 사람들은 그를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 5년이 지나고 방송국 음악프로그램 구성작가라는 안정된 직업을 얻었다. 약사 동생에게 “나 1년만 용돈 줄래? 내가 쓰고 싶은 소설 맘껏 써 보고 싶다”고 부탁했다. 그렇게 1년 동안 <풍금이 있던 자리>, <멀리 끝없는 길 위에> 등 5편을 썼다.

<엄마를 부탁해>는 100만부 넘게 팔렸다. 인세로 1천원씩만 받아도 10억원은 넘게 벌었다. 한때 공장노동자 신경숙은 이제 금융소득만 4천만원이 넘는 상위 5만명에 들어선 것이다. 그 사이 그녀의 작품에서 ‘가난’이 사라졌다. 한 문학평론가는 “90년대 한국문학은 표절로 시작해 표절로 끝났다”고 혹평하면서 국내 유명 문학상을 석권한 작가 신경숙을 대표적 표절주의 소설가로 지목했다. 신경숙다운 감수성은 문학의 재보수화의 대표주자로 변신했다.

신경숙은 지난 2일자 뉴욕타임스에 “단 한 명의 병사도 구조하지 못해 작가로서 무기력함을 통렬하게 느꼈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노동자들의 총파업을 두고 1877년 7월25일자 사설 ‘공산주의자들에게 점령된 시카고’에서 “굶주린 자들에게 총알밥이나 처먹여라”고 썼다.
 
월 75만원의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을 받다가 하루아침에 쫓겨난 170명의 늙은 홍익대 청소·경비 노동자 이야기는 TV에 안 나오니 잘 모를 일이다. 인세만 챙기면 외국으로 달아나 무슨무슨 대학 방문연구원으로 지내는 작가들은 한국에서 월 100만원도 못 받는 200만명의 근로빈곤층에게는 왜 통렬한 무기력을 느끼지 못하는가.
 
1월1일자 한겨레신문 <삶의 창> 필진으로 옮긴 소설가 하성란은 몇 년 전 조·중·동의 단골 필진 하성란과 얼마나 다를까. 하성란은 지난해 7월7일자 한국일보 34면에서도 “강남의 어느 카페에서 한 잔에 9만원 하는 사향고양이의 배설물로 만든 ‘루왁’ 커피를 가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언론은 이렇게 싸구려 지식소비자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