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년 8월30일 저녁 7시 동경대지진이 나자 동경경시청 앞과 시내 곳곳에 “불령선인이 폭동을 일으키고, 우물에 독약을 풀어 넣고, 살인방화를 하니 경계하라”는 입간판이 서 있었다. 일본인들은 죽창으로 한국인들을 마구 찔러 죽였다. 관동지방에서 6천여명의 죄 없는 한국인들이 도살됐다. 조선인 친일파 박춘금은 상애회를 만들어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복구작업을 시키고는 동경시청으로부터 받은 노임을 몽땅 가로챘다. 하루 2원씩인 2천300명의 노임으로 5천300원을 가로챘다. 그 짓을 3개월이나 해 먹었다. 그 돈으로 긴자에 댄스홀·요정·바 등을 차려 한국 여자들에게 매춘을 강요했다. 김태엽은 긴자에 있는 다방을 부수기도 하고 청루에 가서 공짜로 여자를 차지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24년 3월10일 오사카 나까노시마 공회당에서 ‘조선인 학살 규탄대회’를 열었다. 약 7천여명의 한국인이 모였다. “대창으로 국부를 찔려 죽은 조선 여자들의 수효는 헤아릴 수 없었고, 철사로 손발과 몸뚱이를 전신주에 묶인 5~6세 어린아이들이 머리끝 정수리에 긴 쇠못이 박힌 채 죽어 있었다.”
돗빠 김태엽은 일본 천황암살 미수사건으로 구속됐다가 해방 후 반공투사가 된 박열과 함께 무정부주의 계열의 노동운동을 했다. 해방 후 김태엽도 반공의 기치를 들고 부산에서 한국노총에 가담했다가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노총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살았지만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와는 앙숙이었다.
그런 김태엽도 한 세기 전 ‘대지진’이라는 자국의 위기를 외국인 혐오증으로 해결하려 했던 일본 군국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22일자 중앙일보 8면엔 <축산업 종사 외국인 1천200명 … 경기도 채용 금지 추진 논란>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아찔하다. 농업비자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이 다 쫓겨나게 생겼다. 기사는 “경기도가 구제역 발생국가 출신 외국인 근로자의 축산업 및 관련 업종 채용을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했다. 경기도는 농림수산식품부에 관련 내용을 건의해 법제화할 방침이란다. 최근 경기지역 양주·연천 돼지농가에서 5차례 구제역이 발생했다. 역학조사 결과 구제역 발생국에서 입국한 외국인과 농장주 등이 구제역 전파의 전염원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란다.
단지 추정 때문에 취업을 금지하는 이런 차별정책을 누가 발상했을까. 방역당국은 올 4월 강화에서 생긴 구제역은 농장주가 구제역 위험지역인 중국 여행을 다녀온 뒤 바로 농장에 들어가는 바람에 전파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에 방역당국은 지난 5월부터 축산농가가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신고하고 소독을 받게 했지만 강제조항이 아니라 예방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구제역이 생긴 파주의 농장을 다녀간 도축차량이 고양시 한우농장을 방문한 뒤 이 농장에도 구제역이 발병했다. 구제역 발생지역을 방문한 축산차량이 다른 농가를 돌아다니며 매개체 역할을 했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구제역 위험지역을 여행한 농장주들의 안일한 방역의식과 긴장감 없이 돌아다니는 축산차량이 구제역을 옮기는 주범인데도 경기도는 딱 꼬집어 농업비자로 들어온 이주노동자의 경기도 내 축산업 채용을 금지하겠단다.
갈수록 몇몇 재벌회사의 시장독과점이 심화되고 조세부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하위권인 나라의 대통령이 "한국은 복지국가"라고 웃기는 소리나 하고 있으니 이런 발상도 가능한 걸까. 지난해 아이를 출산한 노동자의 근로소득이 3천993만원인 데 반해 전체 근로자 평균소득이 2천530만원에 불과한 나라에서 3번째 출산에 100만원을 전격 지원하는 걸 출산 장려정책이라고 내놓는 나라이기도 하니. 설탕 값이 10% 가까이 올라 서민물가가 비상인데도 집권당 대표라는 사람이 ‘룸살롱 아가씨’로 얘기꽃을 피우는 나라의 공무원이라면 아마도 충분히 가능한 발상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