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택배노조

로젠택배 노동자가 20일 새벽 로젠택배 부산강서지점(터미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억울합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유서에는 돈이 되지 않는 배송구역을 배정받아 생활고에 시달렸던 상황과 열악한 노동환경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다. 올해만 벌써 열 번째 택배노동자 죽음이다.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서 무한경쟁에 내몰린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고통이 곪아 터지고 있다.

20일 전국택배노조에 따르면 김아무개씨가 이날 가장 먼저 출근한 부산강서지점 관리자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됐다. 새벽 3~4시께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된다.

“힘들고 돈 못 벌어”
누구도 맡지 않던 배송구역 떠안은 신참기사


고인은 새벽 2시41분에 현장 동료 ㄱ씨에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유서를 보냈다. 고인과 함께 일하던 동료들의 증언과 유서 내용을 종합하면 고인은 택배 일을 시작하기 위해 차량을 구입하고 권리금 300만원과 보증금 500만원을 냈지만 수입이 적어 생활고에 시달렸다. 권리금은 배송구역을 받는 대가로 기존 기사에게 주는 돈이다. 고인이 맡았던 구역은 수입은 적지만 일은 힘들어 기사가 없었던 곳이어서 권리금은 지점이 받았다. 권리금과 보증금 모두 지점에 낸 것이다.

유서에 따르면 고인이 손에 쥔 돈은 200만원 수준이었다. 저리 대출을 받아 원금과 이자로 120만원을 갚으니 생활을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권리금 탓에 일을 그만두지도 못했다. 그만둘 때는 자신의 배송구역을 맡을 후임을 구해야 한다는 계약서 조항 탓이다.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정상민 노조 로젠택배부산강서지회장은 “보증금이나 권리금이 있다 보니 그만두려면 손해를 많이 본다”며 “그만두기 힘든 구조”라고 설명했다.

일상적으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다는 증언도 나온다. 정상민 지회장은 “고인은 오전 8시에 나와 저녁 10~11시까지 주 4~5일을 일했다”고 했다. 노조에 따르면 고인은 하루 평균 200여개 물량을 소화했다. 현장노동자들은 “업계 1위 CJ대한통운 기준 400~500개 수준”이라며 “고인이 맡던 업무량은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고인이 담당하던 배송구역은 아파트 6개 단지다. 로젠택배는 상대적으로 물량이 적다. 아파트 한 동에 물량 하나만 있는 경우도 있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고인의 동료 ㄱ씨는 “돈도 안 되는 아파트 단지, 배송만으로 먹고살기는 어려운데 집하 거래처도 없어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하는 구역이었다”고 증언했다. 고인은 지난해 이맘때쯤 처음 택배일을 시작한 1년차 기사였다.

“업무 스트레스와 과로가 만든 산재”

고인이 일하던 현장은 열악했다. 노조에 따르면 정부와 업계가 추석 물량 폭증에 대비해 분류작업에 인력 1만명을 투입한다고 했지만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지난여름 더위로 하차·분류 작업에 어려움을 겪자 현장 노동자들은 중고 에어컨을 사 달라고 했지만, 지점은 해가 뜨기 전 30분 먼저 일을 시작하도록 했다.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전형적인 과로로 인한 사고”라며 “한국은 장시간 노동만을 과로라고 이야기하지만 과로사방지법이 있는 일본에서 과로는 장시간 노동, 업무상 괴롭힘을 포함해 업무 중 발생하는 일련의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하는 심혈관계질환과 정신질환도 과로에 포함시킨다”고 설명했다. 한 사무처장은 “고인은 빈곤상태에 있었고, 목돈을 넣는 불합리한 갑질을 당해 그만두려고 했지만 후임을 구하라고 해 그만두지 못하는, 다양한 갑질을 당해 극단적 스트레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실태조사만 하지 말고 근로감독을 통해 장시간 노동과 부당계약을 모두 적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인봉 노조 사무처장은 “본사 차원에서 권리금·보증금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며 “택배노동자가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두지 못하도록 하는 계약서 조항 역시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사무처장은 “본사는 이익만 가져가고 지점은 시설 책임을 떠안고 있다”며 개선을 촉구했다.

“이게 참 더러운 것 같아요. 일단은 가족들이 있고, 일을 해야지만 돈이 나오는 일이니까요. 지금도 참 생각이 엄청 복잡해요. 이 일을 하는 게 맞는가….” 고인의 동료 ㄱ씨가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말끝을 흐렸다. 개인사업자 신분의 현장 동료는 오늘도 배송업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로젠택배 부산강서지점 관계자는 “지금은 뭐라고 딱히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밝혔다. 로젠택배 본사측은 연결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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