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23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글로벌로지스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도 수원에서 롯데택배 소속으로 일하다 숨진 택배노동자와 관련해 분류인력 꼼수 투입 등 롯데택배를 규탄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롯데택배 노동자 박아무개(34)씨가 23일 오전 집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입사 6개월밖에 안 된 박씨의 죽음 뒤엔 또 과로가 자리 잡고 있었다. 박씨 동료에 따르면 하루 평균 300여개의 물량을 소화해 장시간 노동을 했다. 고인이 일하던 현장은 분류작업 인력 투입이 되지 않고 있었고, 고인은 산재보험은 커녕 입직신고조차 되지 않았던 상태로 밝혀졌다. 16명의 택배노동자가 잇따라 과로사 추정 죽음을 맞으면서, 주요 택배사들이 대책을 내놓았지만 이행이 되지 않거나 더디게 이뤄지면서 여전히 택배 현장에 과로사 위협이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입사 6개월 만에 사망
“하루 14시간 일하고, 물량 많아 힘들어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23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글로벌로지스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인의 사망 경위와 주변인 증언을 통해 파악한 노동 실태를 알렸다.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롯데택배 권선세종대리점에서 일하던 박씨는 이날 출근하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여긴 대리점 관계자에 의해 집에서 발견됐다.

박씨 동료는 지난 7월 입사한 고인이 일을 시작하자마자 물량이 폭증하는 추석연휴를 앞두고 매우 힘들어했다고 증언했다. 증언에 따르면 하루 평균 300여개 물량을 배달하고 새벽 6시 출근해 밤 8시에서 10시 사이에 퇴근하길 반복했다. 길게는 14시간씩 일한 것이다. 고된 업무에 일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몸무게가 20킬로그램이나 빠졌다. 대리점 소장과 이야기를 나눈 끝에 다음달부터는 자신의 물량을 다른 기사와 나눌 예정이었다.

대책위는 이날 고인이 동료와 주고 받은 메시지 내용을 공개했다. 고인은 얼마 전인 지난 15일 동료에게 “오늘도 (택배)300개가 넘음”이라거나 “(일이 끝나면) 그래도 11시” 같은 말을 했다. 추석연휴에 만난 가족들은 “고인이 ‘일이 많아 힘들다’는 말을 했다”고 대책위에 전했다.

김태완 택배연대노조 위원장은 “34세의 젊은 택배노동자가 사회 구조적 문제로 죽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프다”며 “장시간 노동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한 롯데택배는 유족과 국민에 사과하고 실효성 있는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택배사, 과로사 대책 어디로?

대책위에 따르면 박씨가 택배물량을 인수하는 경기 화성터미널에는 롯데택배가 투입을 약속한 분류인력이 없었다. 동료들은 고인이 오후 2시까지 터미널에서 분류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롯데택배는 지난 10월 분류작업에 1천여명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투입비용도 원청이 모두 부담하겠다는 방침이었다. 그런데 롯데택배는 인력 투입 현황을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대책위는 “고인이 일한 터미널에는 추가 인원이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며 “이행 여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진경호 택배연대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서울 송파구 복합물류센터 롯데택배 허브·서브터미널에서 일하는 1천여명의 택배노동자들은 새벽 3~4시까지 배달하는 일상을 아직도 반복하고 있다”며 “롯데택배는 분류인력을 투입하겠다는 대국민 약속도 지키지 않고 있어 반드시 반성하고 사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고인은 근로복지공단에 입직신고조차 돼 있지 않은 상태로 알려졌다.

롯데택배측은 “분류인력 지원의 경우 대리점 협의회와 논의 뒤 5개 지역을 선정해 시범운영하고 있어서 화성터미널에는 투입이 안 됐던 것이 맞다”며 “지점마다 여건이 달라 대리점별로 분류인력·분류지원금 등의 요구사항을 취합해 부족한 상황을 보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롯데택배는 물량과 관련해서도 대책위에 “박씨가 하루 200~250여개를 배송했고 저녁 7~8시 사이 일을 마쳤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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