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가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로젠택배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로젠택배가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에 동참을 거부하고 있다며 규탄했다. 동료 택배노동자가 로젠택배 김천터미널에서 일하다 지난밤 뇌출혈로 사망한 고 김종규(51)씨의 영정을 들고 있다. <정기훈 기자>

또 한 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사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았다. 심야배송을 전담하던 40대 쿠팡 노동자가 사망한 채 발견된 지 불과 7일 만이다.

16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로젠택배를 배송하던 김종규(51)씨가 지난 13일 경북 김천터미널 근처에 정차한 자신의 배송 차량 안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됐다. 김씨를 발견한 동료는 차 안에 구토한 흔적이 있었다고 전했다. 김천의 한 종합병원으로 이송된 김씨는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15일 밤 사망했다. 사인은 뇌출혈이다.

최소 주 60시간 근무, 뇌출혈로 사망

대책위는 고인의 노동시간·강도를 고려할 때 ‘과로사’라고 주장했다. 로젠택배 김천지점장은 고인이 통상 오전 7시50분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10시간씩 주 6일 근무를 했다고 설명했다. 박석운 대책위 공동대표는 “한 사람이 서울시 전체 면적의 4분의 1에 이르는 지역을 혼자 배달했다“며 “지점장은 고인이 하루 10시간 일했다고 하지만 분류작업 등도 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더 장시간 일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인은 높은 노동강도의 업무를 수행했다. 고인의 배송구역은 경북 김천 대덕면과 지례면인데, 면적이 152제곱킬로미터에 이른다. 서울 면적의 4분의 1 규모다. 맡은 곳은 넓어 운행거리는 길었지만 수입과 직결되는 배송 물량은 적었다. 고인의 하루 평균 배송물량은 30~40개 수준으로, 월 수입은 200만원이 채 안 됐다.

근무환경은 나빴다. 로젠택배 간선터미널에는 다른 택배사처럼 자동분류기나 자동운반레일이 없다. 김인봉 전국택배노조 사무처장은 “로젠택배는 근무환경이 최악으로 꼽히는 곳”이라며 “원청인 택배사가 터미널을 운영하는 타 택배사와 달리 대리점주 같은 지점장이 직접 운영해 환경이 더 열악하다”고 지적했다. 로젠택배 노동자들은 분류작업뿐 아니라 택배 상·하차 작업도 한다. 고인 역시 동료들과 분류작업과 상차작업을 직접 했다.

강압적 산재 적용제외 신청 의혹

고인은 지난해 7월 지점장의 회유로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를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인의 신청서에 자필확인란이 비어 있어 산재적용 제외신청이 무효화할지 여부도 주목된다. 김씨의 형은 <매일노동뉴스>와 통화에서 “동생은 지병도 없었다”며 “김씨의 동료들도 적용제외 신청서를 작성해 회사와 정부가 이 문제를 모르지 않을 텐데 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진경호 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지점장이 택배노동자들에게 ‘운전하다 사고가 나도 어차피 자동차보험만 적용받고 산재보험은 안 되니 알아서 판단하라’고 말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적용되지도 않는 산재보험은 가입하지 마라는 의미로 사실상 강요에 의해 신청서를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정부가 산재 적용제외 신청서를 전수조사하고도 공란으로 제출된 신청서를 걸러 내지 못했기에 전면 재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0월 CJ대한통운 택배기사 고 김원종씨 과로사 사건 당시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를 자신이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정부는 실태를 전수조사했다. 같은해 12월에는 국회가 특수고용직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 사유를 엄격히 제한하는 내용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질병·부상, 임신·출산·육아, 사업주 귀책사유로 1개월 이상 휴업하는 경우에 신청할 수 있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김씨 적용제외 신청서의 자필확인란이 공란으로 제출된 과정에 대해 사실을 확인하고 있고 산재적용 여부는 법률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사회적 합의·분류인력 투입 거부한 로젠택배

로젠택배가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에 참여하지 않은 점도 주목받는다. 로젠택배는 사회적 합의기구 논의 중 경영구조 특수성(사모펀드 지분율 100%)을 이유로 이탈했다. 로젠택배는 합의문에 사용자 책임으로 명시된 분류작업 인력투입 비용을 부담하지도, 택배노동자 노동강도를 낮추기 위한 설비 자동화도 이행하지 않았다. 강규혁 대책위 공동대표는 “고인의 죽음은 로젠에 의한 타살이나 다름없다”며 “쿠팡과 로젠도 사회적 합의기구에 들어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로젠택배는 “고인은 주 평균 56시간 정도를 근무했고 배송물량과 배송시간을 고려했을 때 과로 확률은 희박한 것으로 파악한다”며 “로젠은 사회적 합의기구 논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사업구조 특성을 고려해 합의문 취지에 맞게 충실히 노력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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