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지난 12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택배노동자 김아무개씨의 죽음과 관련해 한진택배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지난 12일 택배노동자가 숨진 ㈜한진(한진택배)이 추석 물량 폭증기에 대비한 인력투입을 하지 않았다는 증언이 나왔다. 한진택배는 택배노동자 김아무개씨 사망 뒤 “지병으로 사망했다”고 해명했지만 유족과 동료는 꾸준하게 과로로 인한 사망이라고 주장해 왔다. 한진택배에서 근무 중인 한 택배노동자는 “한진 서브터미널에는 택배자동분류기가 거의 설치되어 있지 않고 추석 물량 폭증기를 대비한 인력투입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난달 16일 추석연휴를 앞두고 정부와 간담회를 가진 택배업계는 분류작업·배송지원에 1만명을 추가 투입하겠다고 약속했다. 간담회에는 한진택배도 참석했다.

유족 “한진은 가족도 모르는 지병 어디서 들었나”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측에 과로사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라고 촉구했다. 대책위와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추석 연휴 전인 22~26일 하루 평균 282개의 물량을 배송했다. 이달 6일에는 301개, 7일에는 420개를 배송했다. 대책위는 “한진택배는 업계 1위 CJ대한통운보다 물량이 적기 때문에 배송구역이 넓다”며 “한진택배에서 200개를 배송하는 시간은 CJ대한통운에서 300~400개를 배송하는 시간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8일 숨진 채 발견된 CJ대한통운 노동자 김아무개씨 동료들에 따르면 고인의 하루 평균 배송물량은 400개가량이었다.

실제 고인은 8일 새벽 4시께 동료에게 “집에 가면 (새벽) 5시에 밥먹고 씻고 바로 터미널에 가면 한숨 못 자고 나와 터미널에서 또 물건 정리해야 한다”며 “저 너무 힘들어요”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고인의 동생은 “사측은 ‘지병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는데, 회사에 ‘가족도 모르는 지병을 어디서 들었냐’고 물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며 “형은 건강했고 지병이 있어 죽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밝혔다.

지난 13일 진행한 부검 결과 고인은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망 2~3개월 전 심근경색을 앓은 흔적도 발견됐다. 유족은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며 약봉지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유족은 “형이 워낙 건강해 (두 달 전에는) 운 좋게 넘어갔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한 것”이라며 “형이 항상 바빠 열 번을 통화하면 아홉 번은 1분도 안 돼 전화를 끊곤 했다”고 덧붙였다.

“명절 끝나고 물량 크게 늘어,
운 좋게 버텼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


김찬희 택배연대노조 울산한진지회장은 “씁쓸하지만 (근무 중인 택배기사들은) 잘 버텼다고, 살아서 버텨 다행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2013년부터 한진택배에서 일한 김찬희 지회장은 코로나19와 추석·택배 성수기가 겹쳐 택배 물량이 늘어난 것을 체감했다고 전했다.

통상적으로 택배 물량이 폭증하는 시기는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다. 이때는 물량이 많을 뿐 아니라 김장철이어서 절인 배추, 김치, 과일같이 무게가 많이 나가는 택배 물량이 다수를 차지해 택배노동자들의 노동강도가 매우 높아진다.

김 지회장에 따르면 울산지점(서브터미널)은 올해 여름 노후화된 자동레일을 교체했지만 늘어난 물량과 추석 성수기에 대비해 노동강도를 낮출 만한 실질적인 방안은 마련되지 않았다. CJ대한통운은 지난해 전국 서브터미널에 택배자동분류기(휠소터)를 도입했다. 휠소터 도입으로 노동강도를 낮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지회장은 “휠소터가 있다면 택배기사 5명당 분류인원이 추가로 1명만 들어와도 어느 정도 노동강도가 개선될 수 있지만 한진은 택배기사 2명당 추가 분류인원을 1명씩 배치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시설이 낙후돼 분류작업 인원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하차인력으로 약간의 인원이 투입됐을 뿐 정부와 7개 택배사가 지난달 약속한 서브터미널 분류작업 추가 충원은 없었다”고 말했다.

한진택배 관계자는 “각 지역 서브터미널마다 자동화 수준이 다를 수 있지만 앞으로 계속 투자하면서 개선해 나갈 것”이라며 “자동화 수준을 높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투자해 왔다”고 밝혔다. 인력충원에 관해서는 “올해는 전년 추석 대비 택배 물량이 30% 늘어날 것으로 전망돼 6~7월부터 인력을 최대한 충원해 왔다”며 “다만 물량 증가율 대비 (현장에서) 원하는 업무에 투입되는 인력은 조금 낮은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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