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

지난 3월 입사 4주차 신입 쿠팡맨이 새벽배송 중 숨진 채 발견됐다. 쿠팡노동자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휴게시간 없이 뛰듯이 일할 수밖에 없는 업무량, 정규직 전환 심사를 앞둔 비정규직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을 증언했다. 이후 6개월이 지났다. 쿠팡맨은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쿠팡은 지난 7월 ‘쿠팡맨’을 ‘쿠팡친구(쿠친)’로 명칭을 변경했다. 여성 배송인력이 꾸준히 늘고 있고, 고객에게 더욱 친밀하게 다가가겠다는 이유에서다. 쿠팡의 이미지 쇄신은 계속됐다. 7월 말 코로나19 고용 충격 와중에 쿠친 1만명 돌파를 알렸고, 8월14일 ‘택배 없는 날’을 앞두고는 “택배 없는 날과 택배기사들의 주 5일 근무를 응원하는 광고”를 내보냈다. 쿠친은 주 5일, 주 52시간 근무, 15일 연차휴가를 보장받고 있다고 홍보했다. 택배노동자 대다수가 특수고용직으로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터라 쿠팡의 ‘착한 고용’을 돋보이게 했다.

그런데 현장 상황은 달랐다. 최근 늘어난 인력만큼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졌고, 근로기준법에 정해진 한 시간 휴게시간은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증언이 나온다.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지부장 정진영)에 따르면 지난 9일 남양주 캠프에서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새벽배송 중 쓰러지는 일이 일어났다. 이 노동자는 이후 응급실에 실려갔고, 다행히 건강을 회복한 상태다.

“휴게시간 중 앱 사용 못하지만
일 멈추지 않는 쿠친”


“휴게시간에 쉬지 않는 캠프가 다수예요. 최근 ‘로켓배송앱’이 휴게시간에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잠금상태로 바뀌는데도 그래요. 쉬는 시간에도 배송하고 사진 찍어 놓고, 쉬는 시간 끝나면 한꺼번에 사진 올리고 이런 식으로 하는 경우가 많죠.”

3년차 새벽배송(1웨이브) 쿠친 민유성(가명)씨의 증언이다. 민씨는 인력이 부족한 캠프에 종종 지원을 나간다. 자신이 근무하는 캠프뿐 아니라 다른 캠프의 사정도 알 수 있는 이유다. 새벽배송 쿠친의 근무시간은 오후 9시30분부터 오전 7시30분으로, 휴게시간 1시간을 빼면 하루 근로시간이 9시간이다. 캠프별 분위기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휴게시간을 쓰지 않는 노동자가 여전히 많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쿠친 강진호(가명)씨는 “로켓배송앱이 쉬는 시간 동안 잠기더라도 배송해야 할 주소지는 확인할 수 있다”며 “온전하게 휴식을 즐기는 캠프 혹은 노동자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이 정규직 심사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쉬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평소 휴게시간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는 어렵지 않다고 한다. 민씨는 “팀즈라는 사내 채팅앱이 있는데 분명 휴게시간인데도 공동현관 비밀번호 등을 묻고 답하는 일이 당연한 듯 이뤄진다”며 “지원을 나가도 캠프별로 다른 휴게시간을 공지해 주지 않아 직접 질문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지부에 따르면 ‘라이트(일반 배송량의 75%)’ 쿠친에서 ‘노멀’ 쿠친으로 전환되면 하루 평균 130가구를 방문해 물량을 배송한다. 9시간 근무지만 실 배송 시간이 7시간 정도다. 배송 출발 전 물건을 상차하는 시간과 두 번째 배송을 위해 캠프에 다시 들려 물건을 상차해야 하기 때문이다. 쿠팡은 2회전 배송이 기본이다. ‘노멀’ 쿠친은 한 시간에 적어도 20가구를 마쳐야 안정적인 배송이 가능하다. 3분에 한 가구를 들러야 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CJ대한통운 같은 대형 택배사보다 배송권역이 넓은 데다가 수시로 배송지역이 바뀐다는 점이다. 정진영 지부장은 “자주 나가던 노선(지역)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곳이 있는데, 배송 속도가 거의 두 배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최근 쿠팡은 쿠친 인력을 크게 확대했고, 국내 기업 고용 규모 4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계약직 노동자로 2년을 버텨야 정규직 전환이 되는 불안정한 노동자다. 정 지부장은 “속해 있는 조를 예로 들면 30명 중 정규직이 6명이고 1년 넘은 노동자가 3명”이라며 “20명은 1년 이하 노동자로, 그중 10명은 3개월도 채 안 된 노동자”라고 설명했다.

“노동자 물량 관여는 경영권 침해라는 쿠팡”

쿠친의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노조는 2018년 10월16일 상견례를 갖고 2018년 단체협약을 위한 교섭을 시작했다. 하지만 2년째 단체협약도 체결하지 못한 상태다. 회사가 임금·단체교섭을 동시에 논의하자는 노조의 제안을 거부해 2019년 임금교섭은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45차까지 진행된 단체교섭도 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노조에 따르면 총 87개 단체협약 조항을 놓고 노사가 의견을 나누고 있다.

지난 7월 고명주 쿠팡 대표가 41·44차 본교섭에 참석하는 등 논의 진전이 예상됐지만 7월29일 45차 실무교섭 자리에서는 다시 노사 입장차를 확인했다. 노조는 쿠친의 노동강도와 환경을 결정짓는 물량에 관해 논의하기를 요구했지만 사측은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고 전했다. 해당 조항은 단체협약 76조(물량관리)다. 회사가 노동자의 건강보호와 재해 방지를 고려해 물량을 설정하고 월 1회 캠프별 배송 목표치를 공개, 목표치 변경시 사유를 구성원에게 공개 같은 내용이 담겼다.

노조 관계자는 “회사는 노동자를 위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지만 노동자가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기 위해 제안하는 내용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며 “물량은 곧 노동강도 문제인데 회사는 노동강도가 주관적인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부정한다”고 비판했다.

8월부터 코로나19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교섭이 또다시 멈춰 선 상태다. 정진영 지부장은 “캠프마다 지역 특성에 따라 배정 물량이 달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고 노조 또한 고민”이라면서도 “휴게시간 동안 제대로 쉬도록 하려면 물량 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쿠팡측은 “배송인력의 건강을 위해 자율적으로 실시해 오던 휴게시간을 4시간 정도 일하고 나면 1시간 의무적으로 쉬는 휴게시간 의무제도로 바꿔 지난 7월부터 적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교섭과 관련해서는 “노동관계법을 지키고 있으며 노조와 성실히 협의하고 있다”며 “교섭이 일시 중단된 것은 코로나19가 재확산해 서로 건강을 지키는 것이 좋다는 노사 간 동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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