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쿠팡 특별관리감독을 요구했다. <정소희 기자>

쿠팡에서 일하는 노동자 2명이 잇따라 사망해 충격을 주고 있다. 쿠팡에 따르면 지난 6일 서울 구로캠프에서 일하던 관리자 직급의 캠프리더(Camp Leader·CL) A씨와 심야배송을 전담하던 서울 송파캠프 소속 계약직 노동자(쿠팡친구) B씨가 숨을 거뒀다.

지난해부터 고 장덕준씨를 비롯해 쿠팡에서 물류·배송노동자 사망사건이 잇따르면서 노동환경과 야간노동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지만 결국 비극을 멈추지는 못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죽음의 기업’ 쿠팡을 중대재해 다발사업장(산재다발 사업장)으로 지정하고 특별근로감독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심야배송 전담하던 노동자, 뇌심혈관계질환 사망”

송파캠프 소속으로 새벽배송을 한 B(48)씨도 지난 6일 경찰에 의해 발견됐다. 휴무 중 이틀간 연락이 닿지 않아 부인이 경찰에 신고했다. 지난해 초부터 쿠팡에서 일하기 시작한 고인은 종종 가족에게 심야노동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했다고 전해졌다. 대책위는 유족의 말을 빌려 지난달 25일부터는 입사 뒤 처음으로 휴무를 포함한 1주일간의 휴가를 가져 가족여행을 계획하기도 했지만 고인이 피로를 호소해 여행이 취소됐다고 전했다.

사인을 밝히기 위해 이날 오전 1차 부검이 진행됐다. 부검의는 고인의 심장이 많이 부어오른 상태였고 뇌출혈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고인은 생전 휴게시간 1시간을 포함해 하루 10시간씩 주 5일 심야노동을 한 것으로 파악된다. 대책위는 “고인의 월급여는 280만원 수준으로 야간노동 할증을 반영하면 최저임금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진경호 대책위 집행위원장은 “하루의 절반을 분류작업을 하며 보내는 택배노동자들도 과로에 시달려 왔는데 심야배송만 하루 9시간 넘게 해 온 고인의 노동강도는 상상조차 힘든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쿠팡측은 “지난 12주간 고인의 근무일수는 주당 평균 4일·40시간으로 대책위가 지난해 9월 발표한 택배노동자 주당 평균 노동시간인 71시간보다 현저히 적다”고 반박했다.

대책위는 “쿠팡친구는 밤 9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주 5일간 근무하는 것이 보편적 근무형태”라며 “사측은 고인 사망 전 부여받은 4일간의 휴무와 대체휴일, 연차를 반영해 주 40시간 일한다고 주장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맞받았다.

“쿠팡, 상대평가 명목으로 노동자 간 무한경쟁 부추겨”

1년 넘게 계약직으로 일하던 고인은 최근 사측에서 정규직 전환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고인이 생전 가족에게 야간노동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도 일을 그만두기 어려웠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심야배송 전담팀에서 근무하는 정진영 공공운수노조 쿠팡지부장은 “쿠팡은 90%에 육박하는 계약직 노동자를 다양한 방식으로 압박하고 있다”며 “정규직화라는 미명하에 배송노동자(쿠팡친구)들은 배송뿐 아니라 프레시백(포장재)회수 및 정리 등의 각종 잡무에 시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 지부장에 따르면 쿠팡노동자들이 사용하는 배송현황 애플리케이션은 휴게시간에도 접속할 수 있어 정규직 전환을 위해 쉬는 시간에도 배송을 계속하는 노동자들이 많다고 한다.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상대평가를 하는 터라 노동자끼리 배송물량 경쟁을 부추긴다. 또 최근 사측이 인센티브 정책을 변경하면서 그 기준을 알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무리하게 일하는 일도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지부장은 “사측의 평가로 계약이 연장되고 정규직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혼자 쉬게 된다면 좋지 못한 점수를 받아 정규직 전환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며 “쿠팡친구 대부분이 휴게시간에도 무급으로 노동을 진행한다”고 주장했다.

죽음의 사슬, 심야노동 끊어야

국제암연구소(IARC)는 야간노동을 2급 발암물질로 규정한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직무 스트레스는 업무밀도와 노동자의 업무 재량권을 고려하는데 (심야배송은 배송시간에 대한 압박으로) 업무밀도가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노동계는 이번 쿠팡 사망사건을 계기로 심야노동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석운 대책위 공동대표는 “지난해 10월 야간노동을 하다 숨진 고 장덕준씨에 대해서도 4개월 뒤에야 과로사에 의한 사망으로 산재가 인정됐다”며 “심야노동을 금지하는 사회적·공적 규제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영국 쿠팡발 코로나19 피해자지원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근로기준법에도 임산부와 18세 미만 미성년 노동자에게 야간근로를 금지하는 조항이 있다”며 “지난해 10월 사망한 장덕준씨 사례를 비롯해 노동자들 사망사건의 원인이 심야노동 및 과도한 노동강도와 무관하지 않아 생체리듬을 파괴하고 신체적인 무리를 줄 수 있는 야간노동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연대노조 택배산업본부도 이날 성명을 발표하고 “쿠팡의 무리한 심야·새벽배송이 택배노동자 과로를 부추기고 있다”며 “코로나19로 택배노동에 사회가 기대어 사는 이때 택배노동자는 최저임금 수준의 처우로 혹사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40대 쿠팡 관리자 A씨는 지난 6일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정확한 사인은 확인되지 않았다. 쿠팡측은 “지난 주말 A씨가 사망한 것을 확인했다”고 답했지만 자세한 경위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정진영 쿠팡지부장은 “사실관계를 조사 중”이라며 “A씨는 2년 정도 관리자로 근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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