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가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공공운수노조 사무실에서 쿠팡의 무한경쟁 시스템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회사는 휴게시간도 준수하고 법정노동시간도 지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희는 쉬는 시간 없이 내달리며 일합니다. 하루 1시간 무료노동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새벽배송이 늘자 쿠팡은 비정규직에게 할당하는 물량의 75% 수준을 처리하는 ‘나이트’ 직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최저임금을 받는 이들은 더 많은 물량을 처리해야 임금이 오르고, 일반 비정규직으로 계약할 기회를 얻습니다. 나이트는 비정규직 전환을 위해, 비정규직은 정규직 전환을 위해, 정규직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서로 경쟁합니다. 쿠팡맨 쥐어짜는 쿠팡만 웃는 거죠.”

비정규직 쿠팡 배송기사로 1년8개월째 일하고 있다는 조아무개씨가 북받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는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가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노조 회의실에서 개최한 쿠팡 배송기사 노동실태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1인당 처리 물량 ‘2015년 57개→올해 296개’
“휴게시간 사용 못하고 무료 노동”


이날 기자회견은 지난 12일 오전 숨진 채 발견된 비정규직 배송노동자 김아무개(46)씨 죽음을 계기로 열렸다. 쿠팡 정규직·비정규직이 함께 참여했다. 배송노동자에게 할당하는 물량의 변화, 배송기사 노동시간과 휴게시간 사용현황, 쿠팡이 운용하는 배송노동자 근무체계를 증언했다. 이들은 증언에 앞서 “폭증하는 물량을 배송기사에 떠넘기기 급급한 쿠팡에 개선을 요구했지만 우리의 목소리를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며 “노동자가 죽는 참사가 나서야 관심을 받는 현실이 너무 마음 아프다”고 토로했다.

지부에 따르면 쿠팡이 배송노동자인 쿠팡맨을 운용하기 시작한 이듬해인 2015년 1월 배송노동자 1명이 처리하는 하루 물량은 56.6개였다. 35개월이 지난 2017년 12월에는 210.4개로 치솟았다. 지난해 8월에는 242개, 올해 3월11일 기준으로는 296개를 처리한다. 지부가 쿠팡 특정 배송 캠프(물류센터)의 처리 물량을 분석한 결과다.

물량이 늘어나니 당연히 노동강도가 높아졌다. 지부는 새벽배송을 한 배송기사 3명의 지난해 4월25일자 수송배송관리시스템(TMS) 기록 상황을 공개했다. 배송 완료시간·간격·가구수 등을 기록한 문서다. 이들은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6~7시까지 쉬지 않고 일했다. 보통 배송간격은 1~5분이었다. 5분 안에 한 가구 배송을 완료한다는 의미다. 이날 3명 증언자가 얘기한 가장 긴 배송간격은 각각 10분, 13분, 34분이었다. 이동하는 순간이었거나, 잠시 쉰 시간으로 추정된다. 휴게시간 1시간을 다 쓰지 못했다. 지부 관계자는 “A캠프 관리자가 작성한 휴게시간 사용현황을 살펴봤더니 쿠팡맨 10명 중 7명 이상은 휴게시간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휴식을 취한 시간도 30~50분 사이에 그쳐, 사실상 밥만 먹고 곧바로 일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트레이닝 기간은 일 배우는 시간 아니라 시험기간”
실적 못 채운 비정규직은 재계약 어려워


쿠팡맨은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해야 할까. 당사자들은 내부 평가에 의해 임금과 고용 여부가 결정되는 시스템을 지적했다. 김아무개씨 죽음 후 쿠팡측은 “김씨는 입사 후 3개월 트레이닝 기간이라 물량을 평균보다 50% 적게 줬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양주에서 5년째 쿠팡맨으로 일하고 있는 정아무개씨는 “신입직원은 기존 쿠팡맨보다 조금 적은 물량을 배정하지만 50%나 덜 주는 것은 보지 못했다”며 “설령 쿠팡의 설명이 맞는다고 해도 최근 코로나19로 물량이 늘어나 50%를 배정한다고 해도 적지 않은 양”이라고 말했다. 그는 “새벽배송은 2~3회전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시간 내 배송하지 않으면 다음 물량을 처리하지 못할 수 있고, 그런 경우가 몇 번 발생하면 쿠팡은 트레이닝 이후 재계약을 해 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트레이닝 기간이 일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 업무능력을 측정해 계약 여부를 가르는 시험기간이라는 얘기다. 숨진 김씨도 2회전 배송을 했다. 비정규 쿠팡맨 중 입사 1년 내 퇴사하는 비율은 90%를 웃도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부는 “죽음의 배송현장을 벗어나려면 쿠팡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하고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하라”며 “물량 무게와 배송지 환경을 고려한 친노동적인 배송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지부와 성실교섭에 임하라”고 촉구했다. 최준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새벽노동, 과로노동이라는 바이러스를 어떻게 쫓아낼지 고민했으면 좋겠다”며 “안타까운 죽음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쿠팡측은 “개인 배송역량과 지역 여건을 고려해 업무량을 조정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며 “배송인력 부담을 덜기 위해 쿠팡맨을 충원하는 노력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