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10일 닻을 올린 문재인호가 출범 2년을 맞았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 사회’를 전면에 내걸었다. 임기 5년 중 2년이 지난 지금, 노동정책 성적표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노동시간단축·최저임금 인상을 추진했는데, 예상치 못한 반발에 휩싸였다. 대통령선거 공약이자 국정과제인 국제노동기구(ILO) 미비준 기본협약(8개 중 4개)조차 비준하지 못했다. 노동계는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노사정 사회적 대화는 표류 중이다. <매일노동뉴스>가 문재인 정부 2년을 돌아봤다. 세 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글 싣는 순서]

① ‘문재인표 정책’ 안녕한가요
② 컨트롤타워가 없다
③ 남은 3년, 노동정책 시즌2는? 


 

▲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9월 한국을 찾은 가이 라이더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을 만나 ILO 핵심협약 비준과 국내 노동법 정비에 공감했다. <청와대>

“노동이 자랑스러운 나라를 만들고 싶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일 129주년 세계노동절에 내놓은 메시지다. ‘노동존중 사회’를 내걸고 당선된 문 대통령은 이날 “노동존중 사회는 우리 정부의 핵심 국정기조”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그는 어떤 정책을 성과로 보고 있을까.

대통령이 꼽은 노동정책 ‘장밋빛 성과’

메시지만 보면 온통 장밋빛이다.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주 52시간 상한제는 노동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그것을 통해 노동의 질을 높이고자 한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은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높여 줄 것”이라며 “쌍용차와 KTX 여승무원·파인텍·콜텍 등 우리 정부 출범 이전부터 있던 오랜 노동문제가 모두 해결됐다”고 밝혔다.

물론 문 대통령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소득주도 성장’을 앞세운 정부는 최저임금 1만원 공약에 따라 2017년 16.4%, 2018년 10.9%를 각각 인상했다. 결과적으로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은 물 건너갔지만 2년 연속 두 자릿수 인상률을 기록했다.

최저임금 인상은 보수·경제진영의 총공세를 부른 뜨거운 감자였다. 이들은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소득층 일자리와 소득이 줄어 분배지표가 악화했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최근 발표된 노동지표는 다른 결과를 보여 준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24일 발표한 2018년 6월 기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저임금 노동자 비중은 20% 미만으로, 상·하위 20% 간 임금격차는 5배 미만으로 떨어졌다. 노동부는 “최저임금 인상 효과”라고 밝혔다.

노동공약 이행에도 개운치 않은 이유

노동시간도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가 순차적으로 시행 중이다. 노동부의 잘못된 행정해석이 초래한 '주 68시간 근무'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12일 첫 행보로 인천국제공항을 찾아가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공식화했다. 그리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추진했다.

노동부가 올해 1월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추진 실적’(지난해 12월31일 기준)을 보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인원은 17만5천명이다. 2020년까지 정규직 전환 목표 규모(20만5천명)의 85.4%에 해당한다. 17만5천명 중 정규직 전환이 완료된 인원은 13만3천명이다.

지난해에는 쌍용차·한국철도공사 노사가 해고자 복직에 합의했다. KTX 해고자들은 2006년 정리해고 이후 12년 만에, 쌍용차 노동자들은 2009년 정리해고 이후 9년 만에 직장으로 돌아가게 됐다. 올해는 500일 고공농성을 기록한 파인텍과 13년간 복직투쟁을 한 콜텍 문제가 타협점을 찾았다. 오랜 숙제를 푸는 과정에서 대통령과 청와대가 적지 않은 노력을 했다. 이런 결과에도 입맛이 개운치 않은 이유는 뭘까.

최저임금 후폭풍에 소득주도 성장 기조 ‘휘청’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은 겉보기에 화려했지만 실질은 그렇지 않았다. 2년간 노동정책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다. 보수·경제진영은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을 펼쳤다.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집권여당은 노동계 반발을 무릅쓰고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밀어붙였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후폭풍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말이다.

집권 1년차 성과를 2년차 입법으로 까먹기 시작했다. 지난해 5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담은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를 주도한 사람은 여당 원내대표인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문 대통령도 입장 변화를 시사했다. 그는 올해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고용이 어려운 것에 대한) 혐의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있다고 많이 생각하는데 일부 있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 논란에 어려운 경제사정이 더해지면서 소득주도 성장 기조에 균열이 갔다. 지난해 6월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이끌었던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이 물러났다.

보수·경제진영은 노동시간단축으로 눈길을 돌렸다. 꺼내 든 카드는 탄력근로 단위기간(현행 3개월) 확대. 정치권은 재계 요구를 받아들였다. 지난해 11월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에서 탄력근로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입법에 합의했다. 노동시간단축, 아니 법을 지키기 위해 '주 52시간 정상화'를 하면서 애꿎은 탄력근로 단위기간만 늘리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마지막 단계인 3단계(민간위탁기관)에서는 사실상 손을 놓아 버렸다. 기관별로 자율적으로 민간위탁사무 타당성을 검토해 직접수행 여부를 결정하라는 게 정부 지침이다. 정부가 '알아서 하라'는 태도를 취하자 기관들은 앞다퉈 자회사 설립을 통한 고용을 추진했다. 노동계가 “민간위탁을 부추기는 정책”이라고 반발하는 배경이다.

경제는 타이밍인데
'타이밍 놓친' ILO 핵심협약 비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경제는 타이밍”이라고 했다. 국회 마비사태로 추가경정예산안과 민생법안이 처리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다.

그는 알까. ILO 핵심협약 비준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는 것을. 문 대통령은 2017년 9월 한국을 찾은 가이 라이더 ILO 사무총장을 만난 자리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로부터 1년 반이 흘렀지만 전망은 회의적이다.

ILO 100주년 총회가 다음달 열리는데,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노사정 합의에 사실상 실패했다. 노동·시민단체는 물론이고 국가인권위원회마저 ‘선 비준-후 입법’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정부와 청와대는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가 한-EU 자유무역협정(FTA) 분쟁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도 때를 놓쳤다.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된 것은 박근혜 정권 노동부가 사문화된 조항을 근거로 ‘노조 아님’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김영주 전 노동부 장관은 전교조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 '노동부 직권취소 검토' 가능성을 내비쳤다. 가장 좋은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당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불가능하다”고 쐐기를 박았다. 청와대 스스로 진로를 봉쇄한 셈이다.

타이밍을 놓친 건 또 있다. 기억이 가물거리겠지만,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그해에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가 출범했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는 9개월 동안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권고안을 마련했다. 문재인 정부 2년을 맞은 지금, 고용노동행정개혁위 권고안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행 당사자인 노동부가 권고안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탓이다.

윤효원 글로벌 인더스트리 컨설턴트는 “2017년 9월 가이 라이더 사무총장 방한을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이 ILO 기본협약 비준을 적극 추진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전교조 문제는 ILO 기본협약 비준과 연계할 게 아니라 직권취소라는 행정행위로 접근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사회적 대화 위기에 불 댕긴 탄력근로제

'기회'를 놓친 자리에는 '위기'가 들어선다. 문 대통령이 공들여 세운 경사노위는 출범 5개월 만에 위기를 맞았다.

노사정은 올해 2월 경사노위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에서 탄력근로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방안에 합의했다. 경사노위는 여러 차례 본위원회를 열어 합의안을 처리하려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비정규직·여성·청년 계층별 대표 3명이 불참하면서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장외투쟁으로 국회 활동이 멈춰 있긴 하지만 탄력근로 확대와 함께 또 다른 쟁점인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이 처리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문 대통령은 노동절 메시지에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성과로 꼽았다. 지난해 12월 한국서부발전 태안 화력발전소 비정규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씨의 비극적 죽음이 불을 지폈다. 고인의 어머니와 비정규직 동료들, 노동·시민단체 투쟁이 만들어 낸 성과다.

이조차 노동부가 지난달 22일 입법예고한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으로 개정취지가 흔들리고 있다. 노동계는 고 김용균씨가 담당한 업무마저 도급제한 대상서 빠지고 작업중지명령 졸속 심의가 우려된다며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고 반발한다.

"노동정책 점수 1년차 A제로에서 2년차 C플러스로 하락"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 첫해로 돌아가 보자. 2017년 9월 정부는 박근혜 정권에서 추진한 2대 지침(공정인사 지침·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을 폐기했다.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제빵기사 5천300여명 직접고용을 이끌어 냈다. 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 부당전보와 관련해 회사를 부당노동행위로 기소했다. 같은해 11월에는 적폐청산을 위한 고용노동행정개혁위를 출범시켰다. 정부는 또 지난해 1월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소집해 8년 만에 민주노총까지 포함한 사회적 대화를 복원했다.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당시 개혁 드라이브를 유지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잘나가다 용두사미가 됐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문재인 정부 1년차 점수가 A제로였다면 2년차 점수는 C플러스에 그친다”며 “1년차 때 추진한 개혁에 대해 반발이 나오니까 관리모드로 가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김 이사장은 “개혁을 포기하면 지지층이 떠나게 돼 있다”며 “정부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통해 개혁동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사회학)는 “1·2년차 사이에 정부 경제팀이 바뀌고 소득주도 성장을 폐기하는 등 단계적 후퇴 현상이 나타났다”며 “노동정책이 경제정책의 하부개념으로 뒤치다꺼리하는 존재가 돼 버렸다”고 비판했다. 조 교수는 “경제정책이 지금처럼 가서는 곤란하다”며 “대선공약처럼 공정경제 체제를 만들고 노동정책을 제대로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윤정 기자
 

"노동적폐 청산" 외친 고용노동행정개혁위 '흔적' 없이 사라져

고용노동부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가 내놓은 권고안은 어떻게 됐을까. 2017년 11월1일 출범한 고용노동행정개혁위는 지난해 7월31일까지 9개월간 활동했다. 개혁위는 과거 정권 노동부에서 저지른 수많은 부당행위를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확인했다. 개혁위는 이를 5개 분야 15대 과제로 분류해 824쪽의 백서를 만들어 노동부에 전달했다.

개혁위 권고에는 대표적으로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직권취소 또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시행령 조항(노조 아님 통보) 삭제가 있다. 현대·기아자동차 불법파견 사건은 "법원 판결에 따라 조속히 직접고용 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밖에 개혁위 조사 과정에서 노동부의 삼성전자서비스 봐주기, 합법파업을 불법파업으로 규정하기, 창조컨설팅 노조파괴 공작에 노동부가 협조한 사실이 드러났다.

노동부는 개혁위가 제출한 백서 내용을 따로 점검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장을 맡았던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노동부 장관이 바뀐 뒤에는 소통이 없고, 확인도 안 되고 있다”며 “개혁위가 제안한 내용이 시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개혁위가 제안한 내용이 노동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도록 시행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덕호 노동부 대변인은 “개혁위가 지적한 내용 중 일부는 법적 분쟁을 밟고 있고, 전교조 문제는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와 맞물려 있지 않느냐”며 “노동정책이 후퇴한 게 아니라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고 안착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설명했다.

연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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