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유럽연합(EU)이 한국 정부에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으면 한·EU 자유무역협정(FTA) 분쟁단계로 넘어가는 전문가패널에 회부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사회적 대화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정부의 안일한 대처가 무역분쟁으로 비화할 위기에 처했다.

6일 노동계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EU 세실리아 말름스트룀 집행위원은 지난 4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과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앞으로 이런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문희상 국회의장을 참고인으로 명기했다.

EU는 한국이 한·EU FTA에서 약속한 ILO 핵심협약 비준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데 대해 지난해 12월17일 협상 개시를 요청했다. 이달 18일은 협상기간 90일이 만료되는 날이다.

“ILO 핵심협약 비준 약속 이행이 FTA 정당성 유지”
“기업은 노동기본권 포함한 책임기업관행 준수해야”

EU는 서한에서 “한국은 선진국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으로서 국제무역의 주도국이자 본보기”라며 “ILO 핵심협약에 명시된 원칙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면서 경제발전과 무역이 노동권을 존중하고 촉진하는 것과 함께 갈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EU는 이어 “노동체제를 ILO 협약과 일치시키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타당하다”며 “기업들은 책임기업관행에 관한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EU는 기업이 노동기본권을 포함한 책임기업관행을 준수하도록 규정한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과 인권점검실천 의무에 관한 지침을 수립·채택했다”고 제시했다.

국제무역관계에서 국제노동기준이 차지하는 중요성도 언급했다. EU는 “무역관계는 상품과 서비스 거래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국제노동기준과 같은 관련 의제에 관한 가치와 약속에 관한 것”이라며 “이런 약속은 FTA 정당성을 유지하는 데에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U는 “한국 정부가 ILO 핵심협약을 비준할 것을 촉구한다”며 “한국이 우려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 조치를 취했음을 조만간 확인하지 못한다면 EU는 다음 단계(전문가패널)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못 박았다. EU는 “다음달 9일 서울에서 8차 한·EU 무역위원회 이전까지 앞서 제기한 문제 해결을 위한 증거를 보여 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양대 노총 “즉각 ILO 핵심협약 비준절차 돌입” 촉구
정부 “경사노위 논의 서둘러야 … 국회에 협조 구할 것”

EU의 이 같은 요구에 따라 한국 정부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서두르지 않으면 EU와 무역분쟁에 돌입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사회적 대화에 비협조적인 재계에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노동계는 즉각적인 ILO 핵심협약 비준을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국제적인 망신을 더 당하기 전에 ILO 핵심협약을 조건 없이 즉각 비준해야 한다”며 “경총이 부끄러움을 안다면 노조파괴법 요구를 철회하고 국회는 국제기준에 맞도록 법 개정 논의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촉구했다. 강훈중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장은 “ILO 핵심협약 비준은 국제사회와의 약속이자 문재인 대통령 공약사항으로 즉각 비준 절차에 돌입해야 한다”며 “재계도 경사노위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에 협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는 3월 국회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ILO 핵심협약 비준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EU의 요구와 관련해 국회에 가서 설명하고 법 개정 협조를 구할 것”이라며 “ILO 핵심협약 비준을 하지 못하면 두고두고 국제사회에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경사노위에서 논의를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3월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지 못한다면 당황스런 상황이 되고 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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