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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적폐의 유령, 사용자 주장의 허구성송영섭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 송영섭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기치로 2017년 대선 공약과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을 약속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는 최우선 과제로 ‘ILO 기본협약 비준에 필요한 법·제도 점검’ 사항을 다루기로 했다.

기본협약 비준에 필요한 법·제도라고 하면 특수고용·간접고용 등 비정규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보장, 복수노조 자율교섭권 보장, 노조전임자 활동 보장, 파업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금지, 손해배상·가압류를 이용한 노동탄압 금지 등이다. 모두 ILO 기본협약 비준에 걸림돌이 되고 국제사회로부터 폐지 또는 개정을 수차례 권고받은 사항들이다.

그런데 사회적 대화기구라는 허점을 틈타 한국경총은 △쟁의행위시 대체근로 허용 및 파업시 제조업 파견 허용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쟁의행위 찬반투표 엄격화 △부당노동행위 처벌규정 삭제 등 ILO 기본협약 비준과 무관하고 오히려 기본협약 내용에 반대되는 노동법 개악을 의제로 제출했다.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는 기본협약 비준에 반대하는 사용자측과의 타협을 명분으로 사용자측이 요구하는 의제들에 관한 논의를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경사노위에서 정작 논의돼야 할 비정규직 노조할 권리, 복수노조 자율교섭권 보장, 실질적인 파업권 보장 등 핵심적인 노동의제는 사라지고 ILO 기본협약에 위반되는 사용자측 의제가 논의되는 기막힌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사용자들은 “무기대등 실현” “합리적·선진적 노사문화 구축” 운운하며 노동법 개악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 33조는 노동자에게 노동 3권을 보장하고 사용자의 그것에 대해서는 규정한 바 없다. 이는 노동자에게만 노동 3권을 보장하는 것이 노사의 실질적 대응을 실현하게 한다는 기본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6호에 따르면 쟁의행위란 노동조합이 그 주장을 관철할 목적으로 사용자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를 말한다. 현행법상으로도 당해 사업과 관계 있는 자(비조합원·파업불참자 등)의 대체근로가 무한정 허용되고 있고, 필수공익사업장의 경우 합법파업에도 파업참가자의 50%까지 대체근로를 투입할 수 있다. 파견·하청노동자 파업시 원청에 의한 대체근로 투입 또한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무분별한 대체근로로 인해 노동자들의 파업은 무력화되고 사용자들은 현행 법·제도 뒤에 숨어서 미소 짓고 있다. 이렇듯 대체근로 투입 범위가 너무 광범위해서 규제가 필요한 상황인데, 아예 모든 파업에 대체근로를 허용해 달라고 하는 것은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 저해”인 쟁의행위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사업장 내 쟁의행위를 금지해 달라는 요구는 또 어떤가. 현행법상으로도 생산 기타 주요시설과 이에 준하는 시설에 대한 점거가 금지돼 있다(노조법 42조). 범위가 너무 광범위해 평화적인 직장점거조차 금지되기 일쑤다. 대법원은 노동법이 만들어지고 지금까지 일관되게 점거범위가 사업장 시설의 일부분이고 사용자측의 출입이나 관리·지배를 배제하지 않는 부분적·병존적 직장점거는 쟁의행위의 일형태로서 그 적법성을 인정해 왔다.

사용자들의 주장과 같이 사업장 내 모든 직장점거가 금지되면 사업장에서 파업참가 조합원을 축출하고 노동자들을 분리시키며 부당노동행위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 불 보듯 뻔한데 그것이 헌법과 노동법 체계에서 인정될 수 있겠는가. 교섭과 쟁의행위를 장기간 봉쇄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주장되는 단체협약 효력 확장, 유성기업이나 갑을오토텍, 창조컨설팅과 같이 노동 3권을 부정하고 노동조합을 파괴한 사업주, 노조파괴 전문 컨설팅업체들에게 면죄부를 달라는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규정 삭제 주장 또한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사용자측의 억지는 쟁의행위 찬반투표시 파업형태나 기간을 명시하고, 부결시 일정 기간 재투표를 못하며, 가결시에도 그 효력기간을 제한하자는 발상으로 정점에 이른다. 노동 3권은 헌법상 노동자들에게 인정된 기본적인 권리다. 쟁의돌입 여부는 노동조합이 정한 내부 기준에 따라 결정하면 되는 것이지 권리행사 절차를 법으로 규율한다는 것 자체가 노동 3권에 대한 침해다.

ILO에서는 엄격한 의미에서의 필수서비스(생명·건강 직결업무) 등을 제외하고 대체근로를 금지하며, 사업장 부지 점거 또한 파업권에 포함되고,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너무 길게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쟁의행위 찬반투표시 전체 노동자 과반수 찬성을 요구하는 것도 파업권에 대한 지나친 제한이며, 사용자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포함해 충분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누차 강조하고 있다.

ILO 기본협약 비준을 논의하는 마당에 ILO 원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노동법 개악이 가당키나 한가.

그러고 보니 지금 경사노위에서 논의되는 사용자측 의제를 전에도 본 듯하다. 2015년 7~8월 국내 굴지의 대기업 총수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수십억원의 불법자금 출연을 약속하면서 “대체근로 허용, 쟁의행위 요건 강화, 제조업 파견근로 허용, 불법 노동행위(쟁의행위)에 대한 엄격한 법집행” 등 노동 분야에서 기업들의 숙원 사항을 전달했다. 촛불로 탄핵된 지난 정부 권력자와 사용자들이 밀실에서 주고받던 노동법 개악이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현 정부에서, 경사노위라는 대통령 자문기구에서 버젓이 논의 테이블에 올라오는 지금의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송영섭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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