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정 기자
자동차 부품 생산공장에서 일하는 A씨는 잦은 임금체불과 갑질에 어렵사리 노조를 설립하고 회사에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회사는 노조 요구안을 거부했다. 노조가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가결하자 회사는 "법이 바뀌었으니 공장 안에서는 피케팅도 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놨다. 쟁의행위 찬반투표 유효기간(60일)이 보름 정도밖에 남지 않자 조합원들은 "뾰족한 수도 없는데 회사가 하자는 대로 하자"고 A씨를 압박했다. 유효기간 사흘을 남기고 회사 최종안에 도장을 찍은 A씨. 형편없는 단협을 4년간 적용받을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현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에서 논의 중인 한국경총 입법요구 5가지 중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최대 4년) △쟁의행위 찬반투표 절차 보완이 적용됐을 때 사업장에서 일어날 법한 사례다.

경총 요구안 5가지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비롯해 노동 3권을 훼손하는 내용이어서 지금까지 '재계 희망사항' 정도로만 여겨졌다. 그런데 다음달 7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본위원회를 앞두고,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노사정 합의가 추진되면서 재계 희망사항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노노모)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등 8개 법률단체가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S타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집단농성 돌입을 선언했다.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ILO 핵심협약 비준은 흥정이나 거래 대상이 아닌데도 경사노위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에 소극적인 사용자를 설득하는 명목으로 사용자가 요구하는 의제 논의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재민 노노모 사무국장은 "만국의 노동자들이 누릴 노동 3권을 보장하는 ILO 협약 체결을 위해 노동 3권을 없애는 경총안을 거래대상으로 삼았다"고 지적했다.

신인수 원장은 이날부터 경사노위 앞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법률가들이 릴레이로 단식에 동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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