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간사, 홍영표 당시 환노위원장, 임이자 자유한국당 간사, 김삼화 바른미래당 간사. 4명의 의원은 올해 노동시간단축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한 최저임금법 개정안 통과를 주도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노동시간단축 관련 근로기준법과 산입범위를 대폭 넓힌 최저임금법. 20대 국회 전반기 환경노동위원회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법안이다. 여야 사이는 물론 여당 내부에서 갈등이 불거졌을 정도로 큰 쟁점이었다. 노동관계법이 국회를 통과하기는 쉽지 않다. 노동계와 재계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이다. 그런 걸 감안하더라도 20대 국회 전반기 환노위의 노동관계법 처리 성적표는 너무 초라하다.

노동법안 처리율 환경법안 절반도 안 돼
쟁점 아닌 환경법안 처리로 실적 쌓아


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달 6일 현재 20대 국회는 1만3천783건의 법안을 접수했다. 이 중 27.2%인 3천750건이 처리됐다.

헌법개정·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16개 상임위원회 중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가 938건의 법안 중 460건을 처리해 가장 높은 법안 처리율(49.0%)을 보였다. 환노위는 1천199건의 접수법안 중 23.2%인 279건을 처리했다. 17개 상임위·특위 중 법안 처리율 10위였다. 아직도 920개나 되는 법안이 잠자고 있다.

고용노동부 소관법안은 759건 접수됐는데, 14.4%인 109건만 처리됐다. 환경부 소관법안은 440건 중 38.6%인 170건이 처리됐다. 노동법안 처리율이 환경법안 처리율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처리건수도 훨씬 적다. 처리된 법안은 다수가 비쟁점 법안이다. 근로기준법(노동시간단축 관련 21건 포함 28건)과 최저임금법(산입범위 관련 7건 포함 8건)을 제외하고 헌법재판소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개정이나 여야 이견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산업재해보상보험법(20건)·산업안전보건법(14건)을 비롯해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7건,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징수 등에 관한 법률(고용산재보험료징수법) 7건이 환노위 문턱을 넘었다.

노동법안은 노동계와 재계 이해관계가 팽팽하게 맞선다. 여야 간 이견도 클 수밖에 없다. 20대 국회 출범 뒤 1년여 동안 이어진 박근혜 정부에서는 당시 정부·여당이 19대 국회 만료로 폐기된 이른바 노동개혁 5법을 다시 발의했다. 야당은 반발했다. 곧이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면서 환노위를 포함한 상임위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가장 큰 쟁점이었다. 보수야당이 휴일·연장근로수당 중복할증 폐지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 사활을 걸면서 다른 노동법안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부족했다.

대표적인 법안이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건설근로자법) 개정안이다. 건설현장 체불근절과 퇴직공제 가입 확대를 위한 건설근로자법 개정안은 자유한국당 간사도 동의한 민생법안이다. 그나마 여야 이견이 적었는데도 끝내 환노위 고용노동소위(법안심사소위) 벽을 넘지 못했다.

환경법안이 노동법안보다 처리율이 높은 것을 두고 환노위 소속 한 의원 보좌관은 “노동법치고 쟁점법안이 아닌 게 어디 있냐는 우스갯소리가 있다”며 “의원들은 환경법안으로 실적을 쌓을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근기법·최저임금법 처리에 조급했던 여당

집권여당이 근기법·최저임금법 개정안 처리에 지나치게 조급해하면서 국회 통과가 시급한 다른 법안의 발목을 잡았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11월 야당과 휴일·연장근로수당 중복할증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내부 반발에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전에 근기법 개정안을 처리하기 위해 속도를 냈다. 올해 2월에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사 협상이 진행 중인데도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고용노동소위에 상정했다. 5월에는 국회 심사를 중단해 달라는 양대 노총과 한국경총의 공동선언을 외면하고 최저임금법 개정을 강행했다.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의 반발은 묵살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내년 최저임금 결정 이전에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감안해도 급하게 추진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여당 내에서도 “홍영표 환노위원장(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이 임기 내에 성과를 내려고 무리하고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결국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주일은 5일”이라는 이해하기 힘든 판결을 내리는 데 국회의 근기법 개정이 큰 영향을 미쳤다. 최저임금법 개정은 양대 노총의 사회적 대화 중단 선언으로 이어졌다.

20대 국회 후반기 쟁점은 비정규직과 노동 3권
최저임금법처럼 누더기 될 수도


20대 국회 후반기 환노위는 지뢰밭에 비유된다. 문재인 대통령 공약과 국정과제가 즐비하다.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하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과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정안, 특수고용직 보호법안,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각종 집단적 노사관계법 개정안이 관심을 모은다. 더불어민주당이 한국노총과 합의한 통상임금·최저임금 산입범위 일치를 위한 근기법 개정,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나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개선을 위한 법안이 주목을 받을 수도 있다.

법안처리 전망은 밝지 않다. 여당이 보수야당을 압도할 수 있는 의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당 지도부가 야당을 핑곗거리로 삼거나 경제여건 악화를 이유로 법안 처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더불어민주당 안에서는 오래전부터 “노동시간단축과 최저임금법 다음 차례는 특수고용직 보호법안이고 나머지 집단적 노사관계법은 21대 총선에서 압승해야 법안 처리를 시도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특수고용직 보호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이 먼저 다뤄지더라도 최저임금법 개정안처럼 누더기가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보수야당 공세에 밀린 정부·여당의 조급증이 되풀이될 수도 있다. "뿌리산업 파견을 허용해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식의 박근혜 정부 시절 노동개혁법안은 여전히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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