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4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고 최종범씨의 노제가 열렸다. 정기훈 기자
▲ 고 최종범씨의 동료들이 만장을 들고 서 있다. 정기훈 기자

“종범아, 잘 가. 걱정 말고 편히 쉬어라.”

55일 만에 동료를 땅에 묻은 노동자들은 엎드려 절한 채 어깨를 떨었다.

아빠와의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을 아는 것일까. 큰아버지의 품에 안긴 별이는 아빠의 무덤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동생을 먼저 보낸 형들은 흐느꼈다. 갓 돌이 지난 조카의 머리에 얼굴을 묻고는 눈물을 감췄다.

“삼성전자서비스 다니며 너무 힘들었어요. 배고파 못살았고 (…) 전태일님처럼 그러진 못해도 전 선택했어요.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55일 만에 장례 치러

올해 10월31일 카카오톡 메신저에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고 최종범(32)씨가 지난 24일 전태일 열사의 곁에 묻혔다.

전국민주노동자장으로 거행된 고 최종범씨의 장례는 천안의료원 장례식장 발인식을 시작으로 고인이 일했던 천안두정센터 앞 영결식, 서울 서초동 삼성그룹 본관 앞 노제를 거쳐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하관식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고인이 숨진 직후 충격에 힘겨워 언론 인터뷰를 거절하다, 나중에는 삼성그룹 본관 앞에 드러누워 남편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던 아내 이미희(29)씨. 삼성그룹 본관 앞 노제에서 유족인사에 나섰지만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별이 아빠처럼….”

고인의 작은형 종호(35)씨가 대신 말을 이어받았다.

“종범이가 목숨까지 버리면서 하려고 했던 싸움에 함께하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삼성을 상대로 이긴 최초의 싸움이라고 들었습니다. 앞으로 소외된 노동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싸움에서도 이겼으면 좋겠습니다. 유족들도 미약하나마 함께하겠습니다. 동생을 기억해 주세요.”

하관식을 앞두고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입구에는 검은색 만장이 줄지어 섰다. 고인이 묻힌 곳은 모란공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왼쪽 편이다. 전태일 열사가 묻힌 곳과는 200여미터 떨어져 있다.

유족·동료들 “다시는 이런 일 없기를”

당초 고 최종범씨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천안 풍산열사묘역에 묻힐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태일 열사를 언급하며 숨졌던 고인의 뜻을 살리기 위해 모란공원에 안장하게 됐다.

‘모란공원의 맏상주’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씨는 “종범이가 이곳으로 오게 돼 다행”이라면서도 “노동자들이 모란공원에 묻히는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워했다.

55일간 차가운 냉동고에 있었던 시신이 땅속에 들어갔다. 고인이 살아생전 그렇게도 마음에 들어 했다는 푸른색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깃발이 관을 덮었다. 그 위에 고운 흙이 뿌려졌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무덤을 ‘ㄷ’자로 둘러싸고 절을 했다.

가족들을 먹여 살린다며 하루 12시간까지 일했던, “열심히 공부해 노조간부를 하고 싶다”던 서른두 살 최종범씨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한편 이달 20일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 한국경총은 최종범씨와 관련해 △노조활동 보장 △외근기사 차량지원 △임단협에서 임금체계 개선 성실 논의 등에 합의했다. 23일에는 삼성전자서비스 인사팀 관계자들이 천안의료원 장례식장 고인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유족들은 항의의 표시로 맞절을 하지 않았다.

글=김학태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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