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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고 최종범씨 딸, 별이 돌잔치 하던 날] “우리가 아빠 돼 줄게, 차별 없는 세상 꼭 만들자”삼성전자서비스지회 동료와 노동·시민단체 십시일반 생일상 차려
▲ 고 최종범씨의 동료들이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천주교예수회센터에서 열린 최씨의 딸 별이의 돌잔치 자리에서 축하 노래를 불러주고 있다.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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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최별에게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주기 위해 모였습니다. 차별로 얼룩지고 노동권이 무너지는 현실을 이 아이에게만은 물려주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이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지난 13일 서울 신수동 예수회센터 2층에 아기자기한 돌상이 차려졌다. 이날은 10월31일 “배고파서 못 살겠다”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최종범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의 딸, 최별의 돌잔치가 열린 날이다. 태어나 처음 생일을 맞은 별이는 색동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고 해맑은 웃음으로 손님들을 맞았다. 허망하게 남편을 떠나보낸 이미희씨도 이날만큼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생일을 축하하러 모인 사람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전태일 열사의 뒤를 따라간 고인이 43일째 차가운 냉동고에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3개월이 다 되도록 사과는커녕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돌잔치를 열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고 최종범씨의 아내 이미희씨는 이달 3일부터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에서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천막도 없이 비닐 한 장을 덮고 추운 겨울밤을 보낸다. 그는 "남편을 아직 보내지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잔치를 열겠냐"고 반대했다. 삼성전자서비스 최종범 열사 대책위원회를 비롯한 주변의 설득 끝에 돌잔치가 열리기 1주일 전에야 마음을 돌렸다고 한다.

이씨는 농성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아이를 만났다. 열흘 만에 만난 별이는 엄마 품에서 카메라 플래시 세례에 깜짝깜짝 놀라 울음을 터뜨렸지만 생일축하 노래가 나오자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

고인이 생전 딸과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 영상으로 비춰지자 이씨는 눈물을 보였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첫돌은 맞은 아이에게 “어서 커서 낫을 갈라”고 말했다. “너희 애비가 찾아오지 못한 노동의 결과를 별이가 앞장서서 찾아오라”며 금별 목걸이를 선물했다.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축하인사 대신 "암흑과 탄압의 시대, 최종범 열사는 수많은 비정규직에게, 그리고 행동하지 않는 양심이던 정규직에 이미 별이 됐다"며 "민주노총이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의 별이고, 1천700만 노동자의 별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아빠의 빈자리를 대신 채운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은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 별이를 위해 쓴 편지를 읽었다.

“별이가 무서운 꿈을 꾸면 악당을 쫓아 줄 아빠가 없고, 동물원에서 목말을 태워 줄 든든한 어깨가 없어 걱정입니다. 하지만 별이 곁에는 수없이 많은 아빠가 있습니다. 에어컨을 세상에서 제일 잘 고치는 아빠, 요리를 잘하는 아빠, 노래를 잘 부르는 아빠들이 딸바보가 되겠습니다.”

이들은 나중에 별이가 크면 “별이 아빠가 얼마나 훌륭한 분이었는지, 아빠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바꿔 놓았는지 이야기하겠노라”고 약속했다.

생일을 맞은 별이에게 선물이 쏟아졌다. 여성농민회가 운영하는 야채가게 ‘언니네 텃밭’은 망할 때까지 유기농 야채를 별이에게 보내 주기로 했다. 또 민변의 변호사들은 무료법률상담권을, 길벗한의사회는 평생 무료진료권을 증정했다. 금속노조 현대차아산사내하청지회는 별이에게 자전거를 선물했다.

이날 별이는 돌잡이로 붓을 선택해 엄마를 기쁘게 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고, 함께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자고 어른들은 격려했다.

이씨는 "모두가 별이 아빠가 돼 줘 고맙다"며 "남편도 분명 하늘에서 좋아하고 있을 것"이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는 이어 “별이를 예쁘고 사랑스럽게 키우겠다”고 약속했다.

김미영  ming2@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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