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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기획] 비정규직에겐 넘을 수 없는 벽, 부당해고 구제제도노동위는 근로관계 종료 이유로 ‘각하’ … 법원은 “억울하면 민사소송 하라”

올해 5월 방영된 TV드라마 <직장의 신> 13회 부제는 ‘아프니까 계약직이다’였다. 계약직 사원 정주리(정유미분)는 비정규직 주제에 ‘사내 기획안 공모전’에 응모했다는 이유로 황 부장(김응수분)의 미움을 산 뒤 계약해지 통보를 받게 된다. 드라마에서는 미스 김(김혜수분)이 황 부장을 유도경기장으로 불러 패대기치면서 정주리의 계약해지는 없던 일로 끝난다.

현실에서는 어떨까. 계약기간이 두 달 남은 비정규직 정주리가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한다면 이길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노동위는 정주리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 왜 그럴까.

부당해고지만 부당해고라고 말할 수 없다? 

   
 

A씨는 올해 3월4일 부산 동래구청 숲 가꾸기 기간제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그런데 동래구청은 A씨를 채용한 지 일주일 만에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해고를 통보했다. A씨는 부산지방노동위원회를 찾아가 억울한 사정을 호소했다. 부산지노위는 A씨의 근로계약이 올해 6월 말까지이므로 징계절차를 거치지 않은 해고는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그런데 중앙노동위원회는 달랐다. A씨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부산지노위의 결정을 취소하는 각하 결정을 내렸다. 중노위는 재심 기간 중 A씨의 계약기간이 종료된 것을 이유로 삼았다. A씨는 "3개월짜리 비정규직에게 노동위 부당해고 구제절차는 그림의 떡"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법원의 높은 문턱을 대신해 노동자들의 권리구제를 보다 쉽게 하도록 만들어진 노동위가 정작 비정규직에게는 이른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 되고 있다. 지노위에서 부당해고로 판정받더라도 A씨처럼 중노위 재심기간 중 근로계약이 끝나면 모든 것이 없던 일이 돼 버리기 때문이다.

A씨뿐만이 아니다. 3일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이 중노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종결된 사건 가운데 중노위가 각하 결정을 내린 사건은 28건이다. 그중 10건은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각하됐다.

노동위 규칙에 따르면 "신청하는 구제의 내용이 법령상·사실상 실현할 수 없거나 신청의 이익이 없음이 명백한 경우" 각하 사유가 된다. 우리말로 물리친다는 의미인 ‘각하’는 행정법상 행정기관이 심판청구서나 신고서의 수리를 거절하는 행정처분을 말한다. 부당해고 구제신청이 각하됐다는 것은 노동위가 부당해고 여부를 따지지도 않고 구제절차를 진행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각하 결정이 내려지는 사건은 신청자가 비정규직이거나 영세사업장 노동자인 경우가 많다. 노동위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거나 근기법이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인 경우에는 신청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 처분을 내린다. 근로계약이 종료된 비정규직에게는 돌아갈 일자리가 사라져 구제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한다. 부당해고 구제제도가 사회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비정규직에게 오히려 ‘구멍’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탓에 최근 10년간 부당해고 판정 추이를 보면 인정률은 반토막이 나고 각하율은 두 배로 껑충 뛰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그래프 참조, 2010년 전북지노위(동일인이 249건 신청) 제외>

억울하면 민사소송 제기하라는 법원

노동위는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지만 “판례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은 2001년 아파트 위탁관리업체가 중노위를 대상으로 낸 부당해고 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근로자가 부당해고 구제신청으로 해고 효력을 다투던 중 근로계약이 종료되면 구제이익은 소멸한다”며 “중노위가 부당해고 판정을 내린 것은 위법하다”(2000두7186)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해당 사건의 노동자가 ‘해고기간 중 이미 지급받은 임금 반환의무를 면하거나, 퇴직금 산정시 재직기간에 해고기간을 합산하는 등의 실익’을 위해 부당해고 여부를 따지고 싶다면 민사소송 절차로 해결하라고 주문했다. 이미 근로계약이 끝나 행정처분의 효력이 발휘될 수 없으니 억울하면 민사소송을 제기하라는 것이다.

이런 법원의 판단은 불합리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노동위 설립근거가 민사소송을 대신해 행정명령을 통해 노동자 구제를 신속하게 하겠다는 것인데, 법원이 이를 대놓고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판결이 확대된다면 노동위 존재의의에 대해 의문을 품는 노동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상자기사 참조>

"근로계약이 종료되면 구제이익도 소멸한다"는 법원의 논리는 부당해고 구제절차가 초심과 재심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황당하게 구체화된다. 동래구청의 A씨처럼 지노위 결정 이후 근로계약이 끝난 경우라면 사용자의 재심 신청만으로 초심의 부당해고 구제명령을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다.

노동위는 이런 문제를 해소하려고 내부 규정인 ‘심판사건 업무처리 매뉴얼’을 통해 초심 구제명령 이후 원직복직이 불가능한 경우(노동자의 사망·정년·근로계약기간 만료·자진퇴사·폐업 등) 해고기간 중 임금상당액만이라도 지급받을 수 있도록 했다.

황당한 법리, 사용자 ‘대박’ 노동자 ‘쪽박’

법원은 이마저도 용인하지 않고 있다. 2009년 경기지역의 한 운수노동자가 승무정지 징계 3개월 처분을 받고 부당징계 여부를 다투다가 중노위 재심 결정이 나오기 전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경기지노위는 초심에서 부당징계라고 판정했고, 중노위는 노동자가 중도 퇴직했더라도 부당징계인 만큼 승무정지 3개월분의 임금은 줘야 한다고 판정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근로관계가 종료되면 구제이익도 소멸한다”며 “중노위가 내린 결정은 위법하다”(2008두22136)고 판결했다.

더 심각한 것은 소송당사자가 누구냐에 따라 법원의 태도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법원은 근로계약이 끝났더라도 사용자의 구제이익은 인정된다는 입장이다. 부산 카바레 가수 해고사건이 대표적이다. 90년 11월 카바레 업소와 출연 계약을 맺고 일하던 가수가 92년 6월 해고통보를 받고 부산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접수했다. 지노위에 이어 중노위도 부당해고라고 판정하자 카바레 업소 사장은 93년 1월 폐업을 하고 법원에 부당해고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폐업으로 근로관계가 종료됐다 해도 사용자에게 임금상당액 지급명령을 포함하는 공법상 의무가 있는 만큼 노동위 판정의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다”(93누16680)고 판시했다. 이런 판례는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심재진 대구대 교수(법학)는 “노동자의 경우 원직복직이 불가능하면 예외 없이 구제이익이 부정당하는 반면 사용자는 근로관계가 종료돼도 소송의 이익을 인정받고 있다”며 “대법원 판례법리는 소송당사자가 사용자냐 노동자냐에 따라 구제이익이 달라지는 형평성 문제를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 차별시정 제도마저 '무용지물'

법원의 이런 경향은 최근 노동위의 차별시정 명령을 취소하는 판결로 확대되고 있다. 제도가 워낙 부실해 노동위에서 별다른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는 차별시정 신청제도가 법원에서 뿌리째 뽑힐 판이다.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경기도 부천에 위치한 자동차운전학원에서 1년 계약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B씨는 월급날마다 화가 치솟았다. 정규직 운전강사와 일은 똑같이 하면서 월급은 절반만 받았기 때문이다. 회사는 운전강사 경력과 상관없이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본급이나 연장수당을 현격하게 적게 책정하고, 상여금(100만원)이나 차량유지비·휴가비·애경사비는 지급조차 하지 않았다. B씨는 결국 지난해 10월 근로계약 만료를 한 달 앞두고 인천지노위에 차별시정을 신청했다. 인천지노위와 중노위는 "비정규직 운전강사에게 상여금이나 휴가비·애경사비 등 복리후생비를 차등지급한 것은 차별"이라며 시정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지난달 22일 차별에 대한 보상을 손꼽아 기다리던 B씨에게 날벼락 같은 판결이 떨어졌다. 서울행정법원이 "중노위의 차별시정 명령을 취소해 달라"고 소송을 낸 사용자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2013구합9304)

법원은 "B씨의 근로계약기간이 중노위 재심판정 이전에 종료돼 앞으로 더 이상 차별적 처우를 받을 가능성이 없고, 사용자도 차별시정 명령을 이행할 수 없어 실효성이 없다"며 중노위 판정이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현행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서 차별시정 신청제도의 제척기간을 6개월로 규정한 것에 대해서도 법원은 “근로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는 적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서울행법의 판결대로라면 사용자는 비정규직을 합리적인 이유 없이 차별해도 근로계약 기간만 끝나면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는 결과가 빚어진다. 박성우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노동위원회사업단 기획위원)는 “법원의 판결은 장기간 고용이 전제돼야 차별시정 신청도 할 수 있다는 것인데 단기간 고용계약을 하는 기간제나 단시간·파견 노동자를 배제하면 과연 누가 차별시정을 신청할 수 있겠냐”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노동위 설립 취지 흔들 … 법 개정 요구 높아

근로관계가 종료되면 노동자의 권리구제 이익도 소멸된다는 법원의 판례가 바뀌지 않는다면 법을 고쳐서라도 비정규직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심재진 교수는 “법원의 판례법리는 중노위의 행정처분이 민사상의 집행력을 가지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인데, 2007년 이행강제금 제도가 도입된 만큼 충분히 보완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적어도 미지급임금 지급과 관련해서는 법원이 행정적 구제절차에 대한 입법의도를 고려해야 하는데 민사법원 우선주의만 내세우고 있다”고 우려했다.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노동위의 설립취지는 행정적 구제서비스를 통해 노동사건을 저렴한 비용으로 신속하게 해결하는 데 있다”며 “법을 개정해서라도 부당해고 기간 중 미지급 임금이나 차별처우에 대한 금전보상 문제는 구제이익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노위, 근로기준법 개정 검토

"부당해고 다투다 근로관계 종료돼도 임금지급 가능해야"




중앙노동위원회는 최근 ‘노동위원회 구제신청 대상·제척기간 등 쟁점사항’에 대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유성재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맡은 연구용역의 초점은 '임금에 대한 독립적 구제이익 가능성'에 맞춰져 있다.

"근로관계 종료시 구제이익도 소멸한다"는 법원의 판례가 변경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중노위가 결국 법 개정에 무게를 싣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노동위 역시 조직 존립에 대한 위기의식이 크다는 방증이다. 실제 중노위 관계자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부당해고일 경우 근로관계가 종료돼도 행정처분으로 해고기간 임금 상당액을 지급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하겠다는 설명이다.

연구용역은 이달 말 마무리된다. 중노위가 어떤 방안을 마련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김미영  ming2@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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