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30일 희망연대노조 티브로드지부가 원청인 티브로드 본사에서 벌인 점거농성. 농성에 당황한 티브로드측이 교섭을 보장하면서 한 달 가까이 중단됐던 노사협상이 재개됐다. 정기훈 기자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티브로드지부는 지난 3일 노사가 도출한 임금인상과 고용보장·노조활동 인정 등 임금·단체협약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를 7일 실시한다.

6일 지부에 따르면 이날 조합원 찬반투표가 가결되면 한 달 넘게 진행된 파업을 중단하고 8일 업무에 복귀한다. 지부는 지난달 4일부터 파업을 벌여 왔다.

사측과의 조인식은 이번주부터 본격화하는 티브로드 14개 협력업체와의 개별 임단협 보충교섭을 마무리한 뒤 열릴 예정이다.

보충교섭에서는 티브로드 원청·협력사협의회와 체결한 포괄협약의 세부조항을 협상한다. 각 센터별로 임금체계가 상이한 가운데 포괄협약의 임금인상안을 구체적으로 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부는 “이번 잠정합의는 원청 사용자까지 교섭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확인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임금인상·고용보장 합의=노조와 티브로드 원청·협력사협의회가 도출한 잠정합의안에 따르면 내년부터 조합원들의 임금이 총액 대비 월 45만원 인상된다. 월평균 60시간에 육박했던 연장·휴일 근로시간은 연장근로 35시간, 휴일근로 7시간으로 제한한다. 노조는 임금인상과 노동시간단축에 합의하면서 월 60만원 정도의 인상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노사는 고용보장에도 합의했다. 협력업체가 변경될 경우 새 업체가 조합원의 고용을 승계하도록 원청인 티브로드가 협조하기로 했다. 일부 협력업체가 시행하는 재하도급을 금지하고, 개인사업자 등의 형태로 채용된 노동자는 협력업체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노사는 이와 함께 경조휴가와 경조금 같은 복리를 동종업계 수준에 맞추기로 했다. 연간 1만시간의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 보장, 총 3곳의 노조사무실 확보, 상·하반기 각각 4시간씩 조합교육 보장에도 합의했다. 노사는 복지기금과 사회공헌기금 조성에도 합의했는데, 규모가 꽤 큰 것으로 알려졌다.

◇원청이 교섭 보장하고 참여=잠정합의의 주체는 노조와 티브로드 협력사협의회다. 하지만 원청인 티브로드측이 사실상 교섭에 참여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달 1~3일 열린 노사 간 집중교섭은 지난달 30일 지부 조합원들이 서울 광화문 티브로드 본사를 점거한 것을 계기로 마련됐다. 지부의 점거농성에 대해 티브로드측은 “원청에서 교섭을 담보하고, (티브로드) 이상윤 사장의 재가를 받은 임원이 확인한다”는 것에 합의했다. 이어 진행된 집중교섭에는 티브로드 관계자들이 참여했다. 교섭이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지난달 노조와 협력업체 간 진행된 물밑접촉에도 원청 관계자들이 참석해 협상내용을 타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임금인상과 사회공헌기금 조성 등 이번 잠정합의에 소요되는 비용도 티브로드가 지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과 달리 티브로드가 나선 까닭=티브로드와 기술·고객센터인 협력업체들의 관계는 삼성전자서비스와 협력업체인 지역센터 간 관계처럼 위장도급 의혹이 짙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원청 콜센터에서 개인휴대용단말기(PDA)를 통해 각 센터 기사들에게 업무를 지시하고, 대다수 센터장이 원청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티브로드는 삼성전자서비스와 함께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되기 시작한 서비스업종 간접고용 문제의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그런데 삼성전자서비스가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센터지회 교섭요구를 거부한 데 반해 티브로드는 교섭을 주도하며 잠정합의를 이끌었다.

티브로드측이 협력업체 노사교섭에 참여한 것과 관련해 최태원 SK그룹 회장 형제가 횡령 혐의로 실형을 받거나 구속되면서 재벌대기업에 대한 사회적 비난 여론에 부담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티브로드의 모기업 태광그룹의 이호진 전 회장과 이 전 회장의 모친 이선해 전 상무가 1천400억원의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각각 징역 4년6개월과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사실도 주목을 받고 있다.

티브로드의 이번 잠정합의가 위장도급 의혹을 받고 있는 사업장 노사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관심사다. 희망연대노조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협력업체 노사관계라며 발뺌하던 티브로드측을 교섭장에 이끌어 냈다”며 “원청에게서 협력업체 노사관계와 노동조건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성과”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