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2011년 10만3천명, 지난해 8만1천명이 경영상의 이유로 직장을 잃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기업이 정리해고를 하기 위해서는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 사용자는 해고 회피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아울러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으로 해고 대상자를 선별하고, 정리해고에 앞서 노조나 근로자측과 성실하게 협의해야 한다. 하지만 근기법상 이런 요건은 무용지물이 된 지 오래다.
◇영업흑자인데도 ‘미래 위기’ 이유로 정리해고=11일 민주노총 법률원(원장 신인수)이 정리해고가 시행된 15개 소속 사업장의 재무제표와 정리해고 관련 법원의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절반에 가까운 8곳에서 정리해고를 해야만 하는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오히려 막대한 영업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드러났다.
법률원 분석 결과에 따르면 파카한일유압(누계 96억원)·시그네틱스(2년간 388억원)·한진중공업(조선부문, 2년간 4천516억원)·흥국생명(2년간 796억원)·K2(1년간 600억원)·코오롱(1년간 1천515억원)은 정리해고 당시 영업흑자였다.
흥국생명은 외환위기 직후인 98년부터 2004년까지 매년 흑자행진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2005년 1월 ‘미래에 올 수 있는 경영상의 이유’로 노동자 27명을 잘랐다. 보워터코리아는 정리해고를 했던 2011년 31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지만, 정리해고 이전 다양한 구조조정으로 기업경영이 호전되고 있었다. 2011년 11월 당시 언론들은 “경영위기를 겪던 한국공장이 불과 6개월 만에 직원들의 노력으로 흑자를 기록했다”고 보도할 정도였다. 쌍용자동차는 대규모 정리해고 시행 전년인 2008년에 98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회계조작과 기획부도 의혹이 불거진 상태다.
◇노동자만 희생되는 ‘해고 회피 노력’=조사 대상 사업장 사용자들이 해고를 회피하기 위해 진행한 노력은 인력 구조조정에 집중됐다. 인적·물적 구조조정을 동시에 진행해 노사가 고통을 분담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고통의 대부분을 짊어졌다는 얘기다.
조사 대상 사업장 중 부동산을 매각한 한진중공업 외에 자산을 매각한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풍산마이크로텍이 사업의 일부를 분할·분사하거나 대우자동차판매가 자회사 지분을 매각한 것이 전부였다. 쌍용차나 대우자판이 일부 부동산을 매각했지만 기업회생 절차에 따라 외부에서 강제로 진행한 것이었다. 15개 조사 대상 사업장 중 3곳만이 물적 구조조정을 통해 해고 회피 노력을 했다. 흥국생명은 오히려 정리해고 당시 293억원의 부동산을 매입했다.
조사대상 사업장들은 모두 정리해고 회피노력을 아예 하지 않거나 상여금·복리축소, 휴업·휴직, 희망퇴직 등 노동자들의 희생이 필요한 사전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신인수 원장은 “경영상 위기를 불러일으킨 경영진은 고통을 분담하지 않고, 귀책사유가 없는 노동자들만 다양한 방법으로 책임을 떠안았다”고 비판했다.
◇무용지물 근기법=그럼에도 대법원은 흥국생명(2005년)·동서공업(2013년) 사건에서 “미래에 올 수 있는 경영위기도 정리해고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고 있다. 근기법상 정리해고, 다시 말해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제한'(제24조) 조항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신 원장은 “정리해고 사유가 되는 긴박한 경영상 필요에 대해 법원이 제대로 심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근기법 조항을 개정해 사전에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