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비정규직 문제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 경기침체에 따른 고용불안이 노사관계와 노동시장의 주요 화두로 떠오를 전망이다. 특히 새로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이 주목된다. 지난해 최악의 상황을 겪은 진보정당의 새판 짜기 움직임이 가시화될지도 관심사다.

◇박근혜 당선자와 비정규직=<매일노동뉴스>가 노사정 관계자와 노동문제 전문가 100명에게 ‘2013년에 주목할 노동이슈’를 설문조사한 결과 61명이 비정규직 문제를 꼽았다. 응답자들은 우리 사회 양극화 심화의 주범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지목했다. 새로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경우 사회안정을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우려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비정규직 공약은 이명박 대통령보다 다소 진전된 내용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정부가 사용자인 공공부문의 경우 가시적 성과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박 당선자는 2015년까지 공공부문 상시·지속업무 비정규직을 전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야당도 동의하고 있어 무리 없이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설문에 응한 한 응답자는 “정부가 생색내기 가장 좋은 영역이 공공부문”이라며 “단기적이고 다소 선정적인 해법들이 던져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건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민간으로 파급효과를 미치느냐다. 노동계는 사용사유 제한을 도입해 기간제 노동자 사용을 억제하거나 민간기업에 무기계약직 전환을 강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박 당선자는 사용사유 제한에 반대하면서 민간기업 고용공시제도 등을 통해 정규직 전환을 유도한다는 구상이다. 또 다른 전문가는 "사전적으로 비정규직의 발생을 제한할 것인지, 사후적으로 차별을 금지해 폐해를 줄여 갈 것인지를 두고 논쟁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불법파견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사내하도급 문제와 노동자성 여부가 쟁점인 특수고용직 문제도 주목된다. 이번 조사에서 10명이 ‘제조업 사내하청 문제’를, 4명이 ‘특수고용직 노동자성 문제’를 올해의 주요 노동이슈로 꼽았다.

박 당선자는 사내하도급 노동자 차별시정과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사내하도급법) 제정을 공약했다. 사내하도급 노동자가 원청업체 정규직과 동종·유사 업무를 할 경우 차별처우를 금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계약 만료시 사내하도급 사업주가 바뀌더라도 기존 업무가 유지된다면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는 “사내하도급 노동자의 근로·휴게시간과 연장·야간·휴일근무를 계약서에 명시하도록 하면서 사실상 원청의 사내하도급 노동자 통제권, 즉 불법파견을 합법화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사내하도급 보호법이 사내하도급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정기훈 기자

◇노조법, 개정이냐 보완이냐=노조법도 뜨거운 감자다. 올해 7월로 근로시간면제(노조활동 전임시간·타임오프) 시행 3년, 복수노조 시행 2년을 맞는다. 49명의 응답자가 노조법 개정 여부에 관심을 나타냈다.

특히 올해는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근면위)에서 타임오프 한도를 재심의하는 해다. 현행 노조법은 3년마다 타임오프 한도를 재심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결정시한은 4월30일이다. 박근혜 당선자 역시 근면위 논의를 통한 타임오프 한도 조정을 약속한 바 있다. “노조전임자 문제를 종전처럼 노사자율에 맡길 수 있도록 노조법을 재개정해야 한다”는 노동계의 요구는 수용하지 않았다. 타임오프 한도가 일부 완화되는 수준에서 노조법 관련 논란이 봉합될 여지가 커 보인다.

반면 복수노조를 둘러싼 논란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지속될 전망이다. 응답자들은 “신규노조의 증가 추이는 안정세에 접어들겠지만, 소위 어용노조를 활용한 민주노조 무력화 시도는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단결권 보장을 목적으로 도입된 복수노조 제도가 오히려 어용노조를 양산하고, 소수노조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제약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현행 노조법이 이른바 ‘노조파괴 시나리오’의 토대로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다른 응답자는 “다수노조·소수노조를 불문하고 모든 노동자가 헌법상 보장된 노동3권을 향유할 수 있도록 복수노조 제도를 정비하는 작업이 쟁점으로 부각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경기침체와 구조조정 한파=경기침체와 고용불안에 대한 우려도 높았다. 응답자 38명이 일자리 문제에 주목했다. 이와 맞물려 사회적 대타협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본 응답자(10명)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올해 장기침체가 지속되면서 우리 사회의 일자리 창출·유지능력이 축소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로 인해 일자리 위기가 증폭되고, 현재의 양극화 구조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쌍용자동차나 한진중공업과 같은 대규모 정리해고도 우려된다.

이와 관련해 ‘정리해고 요건강화’를 둘러싼 법적 공방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쌍용차 국정조사’가 정리해고 논쟁의 기폭제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된다. 박근혜 당선자도 △정리해고 전 업무 재조정·무급휴직·근로시간 단축 등 기업의 해고회피노력 의무 강화 △대규모 정리해고 발생시 고용재난지역으로 선포, 정부 특별예산지원을 통해 정리해고 피해 최소화 등을 약속했다.

부실·부정선거 논란 끝에 분당된 통합진보당, 4·11 총선에서 정당 득표율 2% 미달로 정당등록이 취소된 진보신당 등 지난해 최악의 한 해를 겪은 진보정당들의 재도약 여부도 눈여겨볼 문제다. 응답자 21명이 해당 문제에 주목했다.

양대 노총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방침 변화도 감지된다. 이미 민주노총은 지난해 통합진보당 분당 사태 이후 배타적 지지방침을 철회했고, ‘민주통합당으로의 지분참여’로 요약되는 한국노총의 정치방침도 유명무실해졌다. 사실상 두 노총 모두 정치방침이 실종된 상태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정치방침 없이 최악의 대선을 치른 양대 노총과 여러 정파·정견 세력이 올해 어떻게 노동정치의 방향을 잡고 이합집산하느냐에 따라 노동자 정치세력화 재시발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낡은 계급정당론을 극복하고 대중적 노동자 정당 건설에 얼마나 많은 노동현장 활동가와 진보정당 세력이 참여하느냐에 따라 노동정치 재기의 성패가 갈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동차업계 노동시간 줄어들까=이 밖에 노동시간 단축과 교대제 개편(20명), 최저임금제도 개선(10명), 경제민주화와 재벌규제(10명)가 올해 부각될 노동문제로 선택됐다.

산업적으로는 올해 처음 시도되는 완성차업체의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과 파급효과에 관심이 모아진다. 현대자동차 노사는 올해 3월부터 '8시간+9시간' 근무형태의 주간연속 2교대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지난해 3월 시범실시를 마친 기아자동차 노사도 현대차와 함께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에 들어간다. 현대차·기아차 노사는 교대제 개편으로 노동시간을 줄이는 대신 추가 인력채용이 아닌 생산성 향상을 통해 기존 생산량을 보전하는 방식을 택했다. 대신 시급제를 월급제로 전환하고, 생산성 향상 연동수당을 통해 임금을 종전대로 지급하기로 했다. 노사가 생산성 향상과 임금을 맞바꾼 것이다.

자동차 부품사들은 완성차업체의 뒤를 따른다. 금속노조와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는 지난해 산별중앙교섭에서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에 합의하고, 부품사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시기를 2014년 3월 말로 명시했다. 교대제 개편을 통해 노동시간을 단축하려는 자동차업계의 시도는 추후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2013년 주목할 노동이슈' 설문조사는 <매일노동뉴스>가 지난해 12월 실시한 '2012년 10대 노동뉴스' 설문조사<본지 2012년 12월31일자 참조>와 함께 진행됐다. 한국노총(15명)·민주노총(15명)·제3노조(7명)·경영계(14명)·정부(14명)·국회의원(8명)·전문가(20명)·기자(7명) 등 노동전문가 100명이 설문조사에 참여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