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이번 사고는 화재사고가 아니라 사업주 의무위반 때문에 발생한 산업재해입니다. 시공사에만 책임을 씌울 게 아니라 물류창고로 이윤을 보는 사업주들에게 참사 책임을 물으려는 사회적 노력을 해야 합니다.”

노동자 38명이 목숨을 잃은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신축공사현장 화재참사에 대한 강태선 세명대 교수(보건안전공학)의 진단이다. 그는 2008년 1월 이천 ㈜코리아2000 냉동창고 신축공사장 화재참사 당시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으로 현장 조사를 했다.

“화재사고가 아니라 산업재해
시공사에만 책임 씌우면 안 돼”


지난달 29일 발생한 물류창고 화재참사는 12년 전 냉동창고 화재와 똑 닮았다. 3일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이번 사고는 밀폐된 지하 공사현장에 농축된 인화성물질·가스가 점화원에 의해 폭발했을 가능성이 크다. 불에 타기 쉬운 우레탄폼이나 샌드위치패널 등으로 불이 옮겨붙어 유독가스를 내며 급속히 불길이 확산하며 피해를 키웠다. 2008년 사고도 보랭작업에 사용된 톨루엔 같은 인화성물질 증기가 정전기에 의해 폭발하면서 발생했다.

12년 사이 유사한 참사는 여러 차례 반복했다. 2012년 8월 광화문 국립현대미술관 화재, 2014년 5월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2018년 밀양 세종병원 화재 등 수십 명의 인명피해를 불러온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사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가벼웠다.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는 40명의 노동자가 숨졌는데도 실형을 받은 이는 아무도 없다. 건설사에 대한 처벌은 고작 벌금 2천만원을 내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강 교수는 “물류창고 건설로 이윤을 내는 진범 사업주들은 다 빠져나가고 말단 하수인만 솜방망이 처벌한 격”이라고 평가했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09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1심 법원이 선고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 6천144건 중 징역·금고형이 선고된 경우는 35건에 불과하다. 세월호 참사 이듬해인 2015년 12월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과실치사상범죄 양형기준을 높이면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건에 대한 선고 형량이 높아지고 있지만 노동계 평가는 냉랭하다. 건설현장 산재의 경우 원청에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돼 있지만 처벌 수위가 낮은 데다가 실형 등의 중형은 하청사가 주로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공사현장 산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원청 발주사가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이행해야 하지만 의무 위반에 따라 사고가 발생해도 과징금을 물면 된다”며 “산업안전보건법과 재판부 판결로는 원청에 산업안전보건 조치를 강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솜방망이 처벌-산재 발생 ‘악순환 고리’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요구 힘 실릴까


2008년 이천 화재 이후 노동부가 내놓은 유해위험방지계획서 심사·확인 제도도 이번 화재참사를 막지 못했다. 이 제도에 따라 모든 사업장은 유해·위험설비를 설치하거나 이전·변경할 때 유해위험방지계획서를 안전보건공단에 제출해야 한다. 공단은 계획서 내용을 확인·심사한다. 노동부에 따르면 공단은 지난해 4월 공사가 시작된 뒤 위험성이 높은 현장이라고 판단하고 서류심사를 두 차례 하고 현장 확인을 네 차례 했다. 이 과정에서 세 차례나 화재를 주의하라고 경고했지만 건설사는 무시했다. 노동부는 제도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 계획서 작성항목을 위험요인 중심으로 개편하고 공단의 심사기준을 강화하기로 했다. 현장 밀착관리도 강화한다.

이번 사고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요구는 한층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조기홍 대한산업보건협회 산업보건환경연구원 직업환경연구실장은 매일노동뉴스 주최 ‘산재사망대책마련 공동캠페인단 15주년 기획좌담회’에서 “원청 대기업에서는 산재사망자가 상당히 줄고 있지만 하청업체는 그렇지 않다”며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에 그에 상응하는 안전보건·산재사망 책임을 더 확실히 지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은 2017년 4월 산업안전 문제에 대해 원청의 책임을 강화한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이달 말 20대 국회가 종료하면 자동폐기된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공기를 단축하기 위해 복합적인 작업이 현장에서 이뤄졌고, 안전보건교육이 미비했던 사실도 드러나고 있는 등 노동자의 안전·생명을 무시한 탓에 다시 비극적 참사가 발생했다”며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에 대해 기업에 철저히 그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부·안전보건공단 ‘지하 공사현장’ 전수조사
환기 시설 의무화 추진


한편 안전보건공단은 물류창고 공사장 등 인화성 유증기가 발생할 수 있는 건설현장을 전수조사한다. 용접노동자를 대상으로 특별교육을 한다. 건설현장 화재사고 원인의 70~80%를 차지하는 폭발사고와 용접작업에 의한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박두용 공단 이사장은 “유증기가 발생하는 사업장에 가스 농도를 낮추기 위해 제트팬(jet fan) 설치를 의무화하고, 이를 위한 지원사업을 하겠다”며 “용접노동자 특별교육과 위험현장 제보를 받아 현장지도·감독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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