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참사 6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추모 리본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정기훈 기자

지난 14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 앞에 노란 팻말을 든 사람들이 일렬로 섰다. 10여명은 길게 늘어서 “세월호는 살인범죄다”“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과 대통령은 국가정보원·해군·해경을 제대로 수사하라”고 쓰인 팻말을 들었다. 봄볕은 의외로 따갑다. 잠깐만 서 있는데도 입술이 마르고 얼굴은 뜨겁다. 가끔 쉬거나 목을 축이면서도 팻말을 든 이들은 꼿꼿이 정면을 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람 간 거리를 뒀지만 바람은 하나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자”는 것이다.

사람들 한가운데 전인숙(48)씨가 있다. 단원고 2학년4반 고 임경빈군의 어머니다. 전인숙씨는 “가만히 있으면 (국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 소리 내고 싸워야 끝까지 진상을 규명할 수 있다”고 1인 시위 이유를 설명했다. 임군의 사망시각과 사망위치는 의무기록마다 달랐다. 정확한 기록을 확보하려 해경·해군·검찰에 자료를 요구했다. 참사 5년이 지나서야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임경빈군이 구조 당시 맥박이 뛰는 상태였고 헬기 이송이 지연돼 적절한 응급조치를 받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임군이 구조된 직후 병원까지 다섯 시간이 걸린 이유가 헬기가 아닌 배로 이송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헬기에는 ‘높은 사람들’이 탔다. 이후 특별수사단은 초기 목격자 증언을 근거로 “당시 경빈군의 생존 가능성이 낮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재난 상황에서 구조가 미흡했고 헬기가 아닌 배로 환자를 이송했다는 조사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전씨는 “(유가족을 사찰한) 국군기무사령부와 해경, 조사를 방해한 사람들을 수사하고 진상규명이 될 때까지 피켓을 들 것”이라고 말했다.

1인 시위는 매일 참여자 숫자가 바뀐다. 세월호 참사 전면 재수사를 요구하며 꾸려진 ‘청와대 1인 시위 시민행동’에 가입한 사람들이나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이 청와대 앞을 찾는다.

대학생 김동식(23)씨도 그렇다. 그는 손팻말에 “상식적인 세상에 살고 싶다”고 썼다. 김씨는 세월호 참사 당시 고3 학생이었다. 그는 “그날이 또렷하게 기억난다”며 “시간이 지나며 참사 원인이 구조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에게 세월호 참사는 망가진 국가를 인식한 첫 계기였다고 한다. 중국어 회화 능력을 살려 지난해 겨울부터 청와대 앞을 지나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세월호 참사를 설명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방문객 발길이 끊겼지만, 진상규명이 될 때까지 힘을 보태겠다고 했다. 김씨 옆에 있던 시민활동가 최창우(63)씨도 “안전불감증인 권력에 참사 방지를 위한 법과 제도를 마련하라고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서울 도봉구에 사는 이경숙(47)씨는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그는 “이전에도 (사회문제에) 관심은 있었지만 현장에 가는 일은 드물었다”며 “또래 아이를 둔 엄마로서 세월호 참사 문제에 마음이 쓰여 1인 시위에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책임자는 처벌받지 않았고, 유가족은 여전히 국가가 구조하지 않은 이유를 묻고 있다”는 것이다.

통인동 노란리본 공작소는 가족과 활동가들이 모여 리본을 만드는 사랑방이다. 정소희 기자

같은날 오후 2시, 시위를 마친 이들이 통인동 노란리본 공작소를 찾았다. 광화문 천막에 있던 노란리본 공작소가 문을 닫은 이후 사람들은 곳곳에서 리본을 만든다. 통인동에서 레코딩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안계섭(47)씨와 박재문(46)씨는 스튜디오 한편에서 작은 블록으로 노란리본을 만든다. 작은 리본과 큰 리본, 세월호를 닮은 배와 ‘0416’ ‘REMEMBER’ 같은 블록 글자가 책상 위에 놓여 있다. 안씨는 “처벌받아야 할 해경 관계자는 승진하고, 조사를 방해하는 사람들은 공직후보로 출마한다”며 “아직도 세월호를 얘기하냐는 사람들이 있는데 세월호 참사를 통해 드러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4·16연대와 (사)4·16가족협의회는 지난달 21대 국회의원 후보·정당에 정책요구안을 제시했다. 민간잠수사와 기간제 교사 등 피해자 지원을 확대하고 참사 당일 대통령 기록물을 공개하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세월호 같은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안전사회를 만들자는 소망을 담았다. 6년이 지나도록 진상규명 요구는 매년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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