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오체투지 행진 4일차인 20일 오전 행진 참가자들이 서울 이태원역 인근을 지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부정경마와 한국마사회 부정채용 의혹을 제기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문중원 기수의 동료들이 고인의 유지를 따른다. 마사회·조교사의 부당지시에 대응하고 노동조건 향상을 위해 노조를 설립했다. 고용노동부가 개인사업자 특수고용직 신분인 이들의 노조 설립신고를 받아들일지 주목된다.

부산경남경마공원 기수들 노조 설립
“노예 같은 삶 살아”


렛츠런파크 부산경남(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일하는 오경환 기수 등은 20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산경남경마공원 기수 노동자들은 민주노조를 건설해 열사정신을 계승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8일 오후 부산 강서구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부산경남경마기수노조 창립총회를 열었다. 부산경남공마공원에서 일하는 기수 35명(외국인 기수 4명, 병가 중인 기수 3명 포함) 중 19명이 설립총회에 참가했다. 부산경남경마공원 기수협회장인 오경환 기수가 위원장에 당선했다. 기수들의 노조설립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렛츠런파크 서울(서울경마공원)과 부산경남경마공원 기수들을 중심으로 공공운수노조 경마기수지부가 꾸려져 있다. 일하는 지역이 다른 데다 특수고용직 신분 등의 제약으로 노조활동은 미미하다. 숨진 문중원 기수가 지부 조합원이었다.

마사회는 경마산업 시행을 총괄하면서 조교사에게 면허를 교부하고 마방을 임대한다. 기수 면허도 관리한다. 마주들은 운동경기 감독과 유사한 조교사와 경주마 위탁계약을 체결한다. 마사회에서 받은 상금이 마주와 조교사의 수입원이다. 조교사는 마필관리사를 고용하고 기수와는 기승계약을 체결한다. 기수는 개인사업자인 특수고용직이다. 같은 사업자 신분이지만 조교사와 기수 관계는 수평적이지 않다. 기수는 마사회에서 기수면허를 받지 못하면 선수등록을 못 한다. 조교사와 기승계약을 체결하지 않으면 말을 탈 수가 없다. 조교사 눈 밖에 나면 성적이 좋지 않은 말을 타거나 말을 탈 기회를 부여받지 못할 수도 있다.

오 위원장은 “기수들은 마사회-마주-조교사로 이어지는 다단계 구조에서 꽃이기는커녕 복종과 굴종의 노예 같은 삶을 살고 있다”며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개장 후 7명의 기수·마필관리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마사회 등의 횡포와 갑질이 원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고 문중원 기수의 죽음은 부정비리와 갑질 횡포가 극에 달해 폭발 지경에 이른 상황임을 보여 준다”고 강조했다.

오 위원장과 기수들은 이날 기자회견 직후 부산지방고용노동청에 노조 설립신고서를 제출했다. 당초 부산시에 제출하려 했으나 부산경남경마공원 소재지가 부산과 경남 김해시에 걸쳐 있어 노동부로 변경했다. 노조 조합원은 설립총회 때보다 늘어났다. 외국인 기수와 병가 중인 기수를 제외한 가입대상 28명 전원이 노조에 가입했다.

노동부 특수고용직 경마기수 노조 설립신고 받아들일까
“노동조건 개선, 돈보다 생명 추구하는 데 앞장설 것”


이들은 노조 설립신고증을 받는 즉시 조교사협회를 포함한 사용자에게 교섭을 요구할 계획이다.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는 “지금은 임금 등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기수가 기승을 거부하고 항의하면 벌금이나 손해배상 청구를 당하고, 심할 경우 업계에서 퇴출당할 수도 있다”며 “합법적으로 노동 3권을 행사해 대등한 노사관계를 만들어 문중원 기수 유지를 이어 가겠다고 기수들이 뜻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노동부가 노조 설립신고를 받아들일지 여부다. 2017년 11월 택배기사들로 꾸려진 택배연대노조가 노동부에서 설립신고증을 받은 이후 특수고용직 노조설립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조합원인 택배기사들도 전국택배노조를 설립했다. 지난해 초 웅진코웨이 서비스기사들이 웅진코웨이노조를 만들었다. 최근에는 가전서비스기사들이 모인 산별노조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조가 출범했다. 모두 노동부에서 설립신고증을 받았다.

노동계는 부산경남경마기수노조에 설립신고증이 교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현주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근로자는 사용종속관계에서 노무에 종사하고 대가로 수입을 받아 생활하는 자로 정의한다”며 “조교사와 기수 간 기승계약 구체적 내용을 조교사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구조여서 기수는 노조법상 근로자임이 명확하다”고 말했다. 그는 “조교사가 기수의 업무수행 과정에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지휘·감독을 하고 있어 사용자 성격이 뚜렷하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출범선언문에서 “노동 3권을 통해 기수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한편 돈보다 생명을, 경쟁보다는 공정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우리가 노조로 인정받고, 민주노조로서 책무를 다할 때 더 이상의 희생을 막을 수 있다고 확언한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