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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남경마공원은 왜 죽음의 일터 됐나개장 후 기수·마필관리사 7명 목숨 끊어 … “외주화로 노동조건 악화, 노사가 해법 찾아야”

“고통도 없고 편히 숨 쉴 곳엘 가기 위해….”(이명화 기수 유서)
“부산경마장 기수들이 최고 힘들고 불쌍해. 도대체 부산에서 몇 번의 자살 시도냐.”(박진희 기수 유서)
“입사 이래 5번의 골절, 한 번의 뇌진탕, 수많은 상처들 (중략) 이제는 그런 쳇바퀴에서 벗어나려 합니다.”(박용석 마필관리사 유서)
“X 같은 마사회”(박경근 마필관리사 유서)
“도저히 앞이 보이질 않는 미래에 답답하고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문중원 기수 유서)

2005년 이명화(사망당시 26세) 기수, 2010년 박진희(사망당시 28세) 기수, 2011년 박용석(사망당시 35세) 마필관리사, 2017년 박경근(사망당시 38세) 마필관리사, 2017년 이현준(사망당시 36세) 마필관리사, 2019년 조성곤(사망당시 37세) 기수, 2019년 문중원(사망당시 40세) 기수.

부산경남경마공원 노동자 2년에 한 명꼴로 세상 등져

5일 ‘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에 따르면 2004년 7월 부분개장, 2005년 9월 전면개장한 렛츠런파크 부산경남(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일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는 7명이다. 2년에 한 명꼴로 죽음을 택한 것이다. 부산경남경마공원은 왜 이런 비참한 통계를 만들어 내고 있을까. 노동계와 시민대책위는 하청·재하청으로 이어지는 경마산업의 독특한 고용형태, 선진경마라고 일컫는 경쟁시스템 도입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공인된 도박산업인 경마산업은 한국마사회가 사업 시행을 주관한다. 마사회는 조교사에게 면허를 교부하고 마방을 임대한다. 기수 면허도 관리한다. 마주들은 감독에 해당하는 조교사와 경주마 위탁계약을 체결하고, 마사회에서 받는 상금을 수익으로 가진다. 조교사는 마필관리사를 고용하고, 기수와는 기승계약을 체결해 경주에 출전시킨다. 기수는 개인사업자인 특수고용직이다.

기수는 조교사와 마사회에 종속돼 있다. 마사회에서 기수 면허를 받지 못하면 선수등록을 하지 못한다. 조교사와 기승계약을 맺지 않으면 말을 탈 수 없다. 마주와 위탁계약을 체결한 조교사도 마사회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마사회에서 마방을 임대하지 못한 조교사는 개업하지 못한다.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 조사위원으로 활동했던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은 “마사회는 마주와 조교사를 아웃소싱하고, 마필관리사와 기수를 이들과 계약관계를 맺게 만들면서 경마산업 전반을 외주화했다”고 진단했다. 전주희 연구원은 “기수는 자영업자 신분으로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사행성 산업에 소속되면서 스포츠 선수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며 “외주화한 고용형태, 마사회 독점구조라는 폐쇄성,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인권유린과 노동조건 악화가 기수 등 경마산업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있다”고 진단했다.

외주화·경쟁체제로 노동조건 불안

마사회가 운영하는 서울·제주·부산경남경마공원 세 곳 중 유독 부산경남에서 죽음이 잇따르고 있다. 부산경남경마공원은 2004년 부분개장부터 다른 곳과 달리 ‘선진경마’라는 이름의 경쟁시스템을 도입했다. 비경쟁성 상금은 줄이고 경쟁성 상금을 확대하면서 경마순위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구조다. 서울경마공원 기수는 월평균 300만원 이상이 기본급으로 책정된 데 반해 부산경남은 150만원 수준이다. 조교사가 기수 임금을 결정하는 영향력이 다른 경마공원보다 월등히 크다는 얘기다. 지난해 11월29일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된 문중원 기수는 유서에 “하루빨리 조교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죽기살기로 준비해서 조교사 면허를 받았다”고 적었다. 불안정한 노동에서 탈출하기 위해 조교사를 준비했다. 2015년 면허를 취득했지만 마사회는 그에게 마방을 임대해 주지 않았다.

김혜진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개인 노력으로는 불합리한 구조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절망감이 문 기수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경마공원 노동자들의 죽음은 겉으로는 조교사 등의 갑질 문제로 보이지만 경마산업 전체를 총괄하면서도 사용자로서 책임은 회피하는 마사회의 태도가 근본원인”이라며 “경마산업 외주화를 통한 무한경쟁이라는 질주를 멈추고 제도개선 방안을 노동자들과 고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편 시민대책위는 지난 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부산경남경마공원 기수·마필관리사 노동실태를 점검하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김혜진 상임활동가와 윤간우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책임연구원이 발제했다. 윤 책임연구원은 이날 “마사회는 기수와 마필관리사의 적정생계비와 고용안정 보장 방안을 마련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당사자들과 대화해야 한다”며 “문 기수를 끝으로 죽음이 반복하지 않도록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제정남  jjn@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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