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또 한 노동자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마음이 내려앉는다. 11월29일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기수로 일했던 고 문중원님이 한국마사회의 비리가 담긴 유서를 남기고 숨졌다. 고인은 유서 뒤에 “혹시나 해서 복사본 남긴다. 마사회 놈들을 믿을 수가 없어서”라는 글을 자필로 썼다. 마사회에 대한 분노와 불신이 이토록 깊구나 생각하며 이 아픈 유서를 읽는다. 유서에 담긴 “도저히 앞이 보이질 않는 미래에 답답하고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는 문장이 박힌다. 최선을 다해서 살았는데 부조리한 이 현실을 나의 의지와 힘만으로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할 때, 노동자는 죽음을 택한다. 이 죽음은 그래서 마사회에 의한 타살이다.

유서에는 문중원 기수가 겪었던 일들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기수들은 조교사와 기승계약을 맺지 않으면 말을 탈 수 없다. 그래서 “조교사들의 부당한 지시에 놀아나야” 했고 “태풍이 불고 모래바람이 날리는 날에도 목숨을 걸고 말을 타야” 했다고 한다. 고인은 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조교사 면허를 따고, 호주와 영국과 일본에서 연수도 했다. 그러나 “높으신 분들과 친분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마사를 대부받지 못해 조교사 일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유서에 가득한 문중원 기수의 울분은 기수들 모두의 고통이리라.

2년 전을 떠올린다. 2017년 5월27일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일했던 박경근 말관리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동조건을 개선해 보고자 노조를 만들었지만 조교사들의 횡포와 마사회의 방임으로 노조는 무력화됐고, 그 절망적인 상황을 폭로하며 목숨을 던졌다. 그리고 두 달여 뒤인 8월1일 이현준 말관리사도 세상을 떠났다. 말관리사는 말을 잘 관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데도 경마 성적에 따라 때로는 최저생계도 안 되는 임금을 받아야 했고, 조교사의 말 한마디에 해고당하기도 했다. 말을 좋아하고 말관리사 일을 사랑했지만, 살기 위해 이 일을 떠난 노동자들도 많았다.

말관리사였던 박경근·이현준 조합원의 죽음 이후 말관리사들은 현장을 바꾸기 위해 뭉쳐서 싸웠다. 그 힘으로 고용구조 개선에 합의했다. 그런데 말관리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마사회와 마주·조교사, 그리고 기수와 말관리사로 이어지는 다단계 고용구조에서는 경마기수들도 결코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없었다. 경마기수들은 개인사업자로 조교사와 계약을 맺는 것처럼 돼 있지만 조교사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조교사는 마사에 대한 대부권한을 갖고 있는 마사회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다단계 고용구조에서 비리가 발생하고 노동자들의 권리는 침해된다.

노동자들의 권리 침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 노동재해다. 2017년 부산경남경마공원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이 진행됐다. 5년간(2013~2017년) 응급센터를 통해 후송된 노동자(107명)를 조사한 결과 총 62건의 산업재해를 보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적발됐다. 당연히 사고원인에 대한 분석도 없고 이에 따른 개선대책도 수립되지 않았다. 이렇게 산재가 은폐된 이유는 마사회에서 규정한 불합리한 마사대부 기준 때문이라는 점도 지적됐다. 산재가 많을수록 마사를 대부받는 데에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조교사들이 산재를 은폐하도록 지시한다는 것이다. 결국 마사회가 산재은폐를 부추긴 셈이다.

기수와 말관리사의 죽음은 마사회 책임이다. 마사회는 자신들이 단지 경마의 시행주체일 뿐 기수나 말관리사와는 고용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마사회는 상금의 비율과 지급방식을 결정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사실상 결정하고, 경마 계획을 세우고 훈련 시간을 조정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결정하며, 마사대부 권한을 행사해 조교사들을 종속시키며, ‘심판위원 제재 가이드라인’을 통해 노동자들을 징계하기도 한다.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마사회가 직접 고용하는 구조가 아니라는 이유로 책임을 은폐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계속 죽고 있는 것이다.

죽음을 통해서만 변화하는 기업은 나쁜 기업이다. 그런데 죽음 이후에도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 기업은 존재 자체로 해악이다. 2017년 두 분 말관리사의 죽음에서 마사회가 제대로 된 교훈을 얻었다면, 형식적인 개선조치 몇 개 내놓는 것이 아니라, 선진경마라는 이름으로 조교사와 기수·말관리사들을 무한경쟁으로 내몬 것에 대해 반성했어야 한다. 마사회가 실질적인 사용자임을 인정하고 노조를 인정하며, 마사회 운영에 노동자의 목소리를 반영했어야 했다. 그런데 마사회는 그러지 않았다. 마사회가 문중원 기수의 죽음 이후에도 제대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마사회에는 희망이 없다. 이런 공공기관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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