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병욱 변호사(법무법인 송경)

“5000만 마력의 ‘성장동력’ 이제 말산업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힘이 됩니다.” 한국마사회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문구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에 의하면 마사회는 한국마사회법에 따라 경마의 공정한 시행과 말산업 육성으로 축산 발전에 대한 이바지 및 국민의 복지증진과 여가선용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했다. 주무기관은 농림축산식품부다. 기관연혁을 살펴보니 1922년 4월5일 조선경마구락부로 최초로 인가됐다. 마사회는 공감과 동행의 사회적 가치 실현으로 말과 사람이 모두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조성이라는 경영목표를 제시한다. 손익계산서를 보니 마사회의 2018년 매출은 7조5천여억원, 매출에서 비용 등을 뺀 당기순이익은 1천820여억원이다. 정말 ‘억 소리’ 나는 공공기관이다.

그런데 이런 마사회의 부산경남경마공원(렛츠런파크 부산경남)에서만 2004년 개장 이래 7명의 기수와 마필관리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11월29일 돌아가신 기수 고 문중원 열사도 그중 한 명이다. 고인은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15년을 기수로 일했다.

고 문중원 열사는 유서에 “마사회는 선진경마를 외치는데 도대체 뭐가 선진경마일까. 그저 시설 좋고 경주기록 좋아서 외국 나가서 좋은 성적만 나면 선진경마인가. 지금까지 힘들어서 나가고 죽어서 나간 사람이 몇 명인데…. 정말 웃긴 곳이다. 경마장이란 곳은…. 더럽고 치사해서 정말 더는 못하겠다”고 썼다.

지난 3일 국회에서 열린 ‘부산경남경마공원 기수, 말관리사 7명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무소불위 마사회 권한은 어떻게 활용되는가?’ 토론회에서 기수와 마필관리사의 열악한 노동현실이 논의됐다. 1993년 개인마주제 전환 이후 기수는 조교사와 기승계약을 체결하는 독립사업자(특수고용 노동자)가 됐다. 마필관리사는 조교사가 고용하게 됐다. 그리고 기수와 마필관리사는 경마 성적에 따른 임금 격차와 생존이 불가능한 기본급에 시달렸다. 조교사에게 종속됐으며, 부당하고 불합리한 지시에 순응해야 했다고 한다. 제주와 부산경남경마공원이 서울처럼 2017년 말부터 마필관리사를 조교사협회가 고용하는 형태로 바꾼 것은 그나마 진전이다.

마사회 부산경남본부가 개장 당시부터 도입한 ‘선진경마’는 순위상금으로 임금을 주고 경쟁성 상금을 확대해 경쟁을 부추기는 방식이었다. 결국 순위에서 밀려나면 임금을 제대로 못 받고 생계유지도 못 하게 됐다. 기수는 특수고용 노동자라 마사회는 제대로 교섭하지 않았고, 고 문중원 열사는 기수와 마필관리사를 관리하는 조교사 면허까지 땄지만 공정하지 않은 정성평가로 마사대부를 받지 못했다.

마사회는 마주·조교사·기수·마필관리사와 관련한 구조적 문제의 정점에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책임이 있다. 마사회 주무부처인 정부도 나서야 한다.

지난해 12월27일 고 문중원 열사의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는 진상규명·재발방지·책임자 처벌·마사회 공식사과를 요구하며 시민대책위원회를 출범했다. 경찰은 부정경마와 마방 임대 비리 의혹 수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마사회가 돈만 잘 버는 회사가 아니라 진정으로 말과 사람이 건강한 대한민국의 새로운 힘이 되려면 고 문중원 열사의 죽음에 대한 진정한 사과부터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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