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정 기자

경제사회노동위원회(현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이달 말까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중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협약(87호·98호) 비준을 위한 필요최소한의 국내법 개정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해고자·실업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노조 가입·설립을 금지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과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 등 ILO가 수차례 폐지 혹은 개정을 권고한 사항을 담은 법률이 개정 대상이다.

4일 오전 국회연구단체 헌법33조위원회 주최로 열린 'ILO 핵심협약 비준, 글로벌 스탠더드 노동권' 토론회에서 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 공익위원들이 공감대를 이룬 '우선 법 개정 사항'이 공개됐다. 개선위는 5일 전체회의에서 노사 의견을 검토한 뒤 6~7일 열리는 공익위원 워크숍에서 공익위원안 도출을 시도한다. 공익위원안을 토대로 차기 개선위 전체회의에서 노사정 합의문이 나오면 국회 입법 과정을 밟는다. 의원입법이 유력해 보인다.

이달 말까지 노조법 포함 쟁점법안 개정 추진

우리나라는 ILO 핵심협약 8개 중 결사의 자유 관련 협약(87호·98호), 강제노동 금지 관련 협약(29호·105호)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ILO 핵심협약 비준 경로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관련법을 개정한 뒤 비준할 것인지, 비준부터 하고 법을 개정할 것인지의 문제다. 개선위에서는 핵심협약 내용과 배치되는 국내법을 먼저 고쳐 비준할 수 있는 기본 토대를 만들어 놓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핵심협약에 위배되는 법률 전부를 개정 대상에 올려 한꺼번에 고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선순위를 정해 일부 법률을 개정해 놓고, 노사정 협의를 거쳐 점진적으로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는 법·제도와 관행을 개선하자는 게 공익위원들의 생각이다.

개선위 공익위원인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제시한 우선 법 개정 사항의 기준은 △ILO가 수차례에 걸쳐 명시적으로 폐지 또는 개정을 강력하게 권고한 사항 △위반했을 경우 ILO의 강력한 제재가 예상되는 것이다.

해당 기준을 적용했을 때 핵심협약 비준 전 반드시 개정해야 하는 사항은 5가지다. 먼저 노조법을 개정해 해고자·실업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 노조 가입·설립이 금지된 자의 단결권을 보장하고, 공무원노조법상 직급·직무에 따라 노조 가입범위를 제한한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 조합원에 한정해 노조임원 자격을 제한한 노조법 23조1항과 전교조에 대한 '노조 아님' 통보 근거가 된 노조법 시행령 9조2항도 삭제 대상에 포함된다. 노조법상 노조전임자 제도와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 전면개정도 우선 법 개정 사항이 된다.

이승욱 교수는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필요최소한의 법 개정 사항인 5개 쟁점을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게 개정하면, 결사의 자유 관련 협약 비준 자체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선위는 이달 말까지 5개 쟁점에 대한 노사정 합의를 이끌어 낸 뒤 국회 입법 과정을 밟겠다는 구상이다. 11월부터는 ILO 결사의자유위원회가 정비 또는 개선을 권고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관행 개선 △행정관청에 의한 노사관계 개입 축소 △업무방해죄와 노조법상 형사처벌조항의 적정성 검토 △손해배상·가압류 등 단체행동권에 대한 사실상 제약 해소 △필수공익사업·필수유지업무 제도개선 방안을 논의한다.

재계 "단결권 강화에 치우친 법 개정 논의 반대"
노동계 "ILO 핵심협약 비준 거래대상 아니다"


노동계는 우선 해결과제를 정해 놓자는 공익위원들의 의견과 맥락을 같이했다. 이날 토론회에 나온 양대 노총 관계자들은 "ILO가 제도 폐지를 명시적·지속적으로 권고한 사항을 중심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되, 정부가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취소, 특수고용 노동자 노조설립신고증 교부 같은 법 개정 이전에 충분히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특히 “특수고용 노동자,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는 협약 비준 전 최우선 과제로 개선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계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법 개정에 반대했다. 김영완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ILO 핵심협약과 권고가 우리나라 노사관계 특수성과 관행을 무시할 만큼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고 만병통치약도 아니다"며 "단결권 강화에만 치우친 법 개정 논의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재계는 △파업시 대체근로 허용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부당노동행위 제도 폐지 또는 노조의 부당노동행위 신설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쟁위행위 찬반투표 절차규정 보완 등 5가지 안을 함께 논의하자고 주장했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실장은 이에 대해 "ILO 핵심협약 비준과 준수는 원칙의 문제이지, 노사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며 "사용자단체의 노동관계법 개악을 도모하려는 민원성 요구를 논의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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