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권 후진국’ 오명을 벗어던질 첫걸음이 시작됐다.

한국 정부는 1991년 국제노동기구(ILO) 가입 때부터 핵심협약 비준 권고를 수차례 받았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올해 7월부터 사회적 대화를 추진한 가운데 ILO 가입 27년 만에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구체적인 입법방향을 공개했다. 노사정 합의로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최소한의 입법으로 단결권 논의를 마무리짓는 공익위원안을 내놨다.

경사노위는 해직자·실업자의 노조가입을 허용하고 공무원·교원의 단결권을 확대하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담았다. 근로시간면제제도(타임오프)는 유지하되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권고했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는 “결사의 자유 원칙에 부합하도록 보호하기 위한 방안 모색”이라고 제안함으로써 소극적 권고에 그쳤다.

단결권 보장 확대로 노조할 권리 찾나

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개선위원회(위원장 박수근)가 20일 오전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공익위원 합의안을 공개했다. 박수근 위원장은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 대회의실에서 언론브리핑을 갖고 4개월간의 논의 과정과 지난 17일 전체회의에서 결정된 공익위원안을 설명했다.

박 위원장은 “지난 17일 12차 전체회의에서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최소한의 입법사항으로서 단결권 관련 논의를 마무리했다”며 “공익위원안을 경사노위 운영위원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개선위는 노사정 합의안 도출을 시도했으나 논의의제와 관련해 재계가 단결권과 단체협약 및 쟁의행위 사항을 함께 다룰 것을 요구한 반면 노동계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단결권 논의만 요구해 이견 봉합에 실패했다. 공익위원들은 이달 초 재계가 요구한 단체협약과 쟁의행위 관련 제도개선사항 일부를 포함시킨 초안을 마련해 합의에 나섰으나 재계 반대로 성사하지 못했다.

개선위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단결권 논의만을 마무리한 채 공익위원안을 발표한 뒤 재계가 요구한 단체교섭 및 쟁의행위 사항을 다음달부터 내년 1월 말까지 논의해 사회적 합의를 추진하기로 했다. 박 위원장은 “합의를 원칙으로 가능한 올해 말, 늦어도 내년 1월까지 논의를 마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공개된 공익위원안은 ILO 핵심협약 87호(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와 98호(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 적용에 관한 협약) 비준을 위한 단결권 확대가 중심이다. 자유로운 노조결성을 위해 해고자·실업자의 노조가입과 활동을 보장하는 내용으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다만 비종업원인 조합원의 기업 내 조합활동이 기업의 효율적인 운영을 저해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 모색도 주문했다.

조합원에 한정해 노조임원 자격을 제한한 노조법 23조1항 개정과 전교조에 대한 ‘노조 아님’ 통보 근거가 된 노조법 시행령 9조2항 삭제도 권고했다. 기업별노조에 한해 노조 임원·대의원 자격을 종업원인 조합원으로 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핵심협약 비준 위한 조속한 법 개정 필요

경사노위는 노동계 핵심요구인 해직 공무원과 교원, 특수고용 노동자 단결권 보장범위 확대도 제시했다. 직급과 직무에 따라 공무원 노조가입을 제한한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을 개정해 5급 공무원 이상이라도 담당업무에 따라 노조가입을 허용하는 방안을 권고했다. 일반직·별정직 공무원에 대한 직급제한 조항 삭제도 주문했다. 소방공무원의 노조가입 허용도 공익위원안에 담았다.

현재 초·중등교육법상 교원에 한정한 교원의 노조가입 범위를 고등교육법상 교원으로 확대하고, 퇴직 공무원과 교원의 조합원 자격 유무는 노조 자율로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단결권 확보와 관련해서는 “결사의 자유 원칙에 부합하도록 보호하기 위한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고 권고함으로써 ILO 핵심협약 취지에 다소 벗어나는 안을 내놨다.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제도는 그대로 유지하되 노조전임자 임금지급을 금지한 노조법 24조와 임금지급을 요구하는 쟁의행위 금지·처벌 조항 삭제를 권고했다. 타임오프 범위를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기관에서 노사 자율로 결정할 수 있는 내용으로 개정하되, 한도를 초과하는 내용의 노사합의에 대해서는 무효로 하는 법 개정을 제안했다.

박수근 위원장은 공익위원안과 관련해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최소한의 입법사항을 확인함으로써 향후 제도개선 대상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후속논의를 거쳐 최종 합의에 이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양대 노총은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단결권 관련 공익위원안은 노조할 권리 보장의 초석을 여는 의미가 있다”며 “신속한 ILO 핵심협약 비준을 통해 노동기본권이 온전히 실현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병욱 변호사(민변 노동위원장)는 “공무원노조나 전교조·청년유니온은 해고자·실업자가 가입해 있다는 이유로 노조로 인정받지 못했다”며 “국회는 경사노위 공익위원들의 의견을 받아 서둘러 노조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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