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의 상징’ 노회찬(62·사진) 정의당 원내대표가 23일 타계했다. 갑작스런 비보에 정치권과 노동계는 충격과 비통에 빠졌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38분께 서울 중구 한 아파트 현관 앞에 노 원내대표가 쓰러져 사망한 채 발견됐다. 경찰은 아파트 17∼18층 계단에서 노 원내대표 외투를 발견했다. 외투 안에서 신분증이 든 지갑과 정의당 명함, 유서가 있었다.

드루킹 특검 압박, “누굴 원망하랴” 유서

노 원내대표 사망은 ‘드루킹 특검’과 연결돼 있다. 노 원내대표는 '드루킹' 김동원씨 측근이자 자신의 경기고 동창인 도아무개 변호사에게 2016년 3월 불법 정치후원금 5천만원을 받은 의혹을 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당원인 드루킹 일당이 지난 대선 과정에서 댓글 조작을 하고 김경수 경남도지사에게 특혜를 요구한 사건의 의혹을 캐던 특검이 방향을 틀어 노 원내대표 수사에 고삐를 좼다. 소환조사가 임박했다는 보도가 나올 때마다 노 원내대표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심리적 부담감을 가중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정의당이 공개한 유서에서 노 원내대표는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경제적 공진화 모임)로부터 4천만원을 받았지만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었다”며 “나중에 알았지만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 후원절차를 밟아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썼다. 그는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정의당과 나를 아껴 주신 많은 분들께 죄송하다”고 했다. 노 원내대표는 유서 말미에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며 “국민여러분! 죄송합니다. 모든 허물은 제 탓이니 저를 벌해 주시고, 정의당은 계속 아껴 주시길 당부드립니다”는 글을 남겼다.

노동운동하며 진보정치 개척한 투쟁가

그는 평생 노동자의 친구였고, 진보정치와 한 몸이었다. 노 원내대표는 경기고 재학시절 10월 유신에 반대해 반독재 투쟁에 참여했다. 고려대 입학 뒤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82년 인천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다가 87년 인천·부천지역 노조와 노동단체를 연합해 인민노련(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을 출범시키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89년 인민노련 결성과 관련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거돼 옥고를 치렀다.

노 원내대표는 이후 진보정치운동에 뛰어들었다. 진보정당추진위원회 대표를 시작으로 진보정치연합, 국민승리21, 민주노동당을 거쳐 2004년 17대 국회에 입성했다. 민주노동당 분당 뒤에 진보신당과 통합진보당, 정의당에서 3선을 하면서 진보정치와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힘썼다. 2013년 삼성 엑스파일과 관련된 검사들의 실명을 폭로한 사건으로 시련을 겪기도 했다. 당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국회의원직을 잃었다. 노 원내대표는 <매일노동뉴스> 초대 발행인으로 진보노동언론의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문재인 대통령 비롯 정치권·노동계 “깊은 애도”

노 원내대표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에 정치권과 노동계는 슬픔에 빠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노회찬 의원의 사망 소식에 정말 가슴이 아프고 비통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유족과 정의당에도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한국의 진보정치를 이끌면서 우리 정치의 폭을 넓히는 데 큰 기여를 해 왔다”고 애도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노 의원은 진보정치 상징으로서 정치인이기 이전에 시대정신을 꿰뚫는 탁월한 정세분석가이자 촌철살인의 대가였다”고 기억했고, 자유한국당은 “노 의원은 진보정치의 상징으로 서민과 노동자를 위한 의정활동에 모범을 보였고 정치개혁에도 앞장섰다”고 평가했다. 바른미래당은 “대한민국 진보정치의 큰 별이 졌다. 노 의원은 노동자와 서민의 편에 서서 기득권의 강고한 벽에 온몸을 던져 항거했던 노동운동과 진보정치의 산증인”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불모의 땅에 노동정치·민중정치·진보정치의 씨를 뿌리고 싹을 틔웠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보수양당이 독점해 온 대한민국을 바꿔 보겠다는 진보정치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며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승리와 진보정치 대통합을 위해 가야할 때 황망히 먼저 가신 것이 애통하고 원통하다"고 조의를 표했다. 한국노총은 "노 의원은 노동운동과 진보정치운동에 큰 족적을 남겼다"며 "그의 유언대로 노동자와 서민의 삶을 지탱하는 진보정치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당당하게 앞으로 전진하길 바란다"고 논평했다.

한편 정의당은 “본질적 목적에 부합하지 않은 특검의 노회찬 표적수사에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노 원내대표 빈소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발인은 27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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