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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고용·특수고용직 잔혹사] 노조 설립했다고 잘리고, 블랙리스트 오르고업체폐업·고용승계 거부 '조직률 2%' 고착 … "사용자·근로자 개념 정립해 노동권 보장해야"

제조업 사내하청업체에 노조를 만든 간접고용 비정규직 수백명이 도급계약 종료와 업체의 사업포기 선언으로 일시에 해고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업체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은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다른 하청업체 이직이 번번이 좌절되고 있다. 노조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소문이 돌았다. 노조 설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특수고용직 택배노동자는 어느날 갑자기 대리점이 폐쇄돼 백수가 됐다. 원청인 택배회사가 대리점을 폐쇄하는 방식으로 노조 설립을 무력화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조 잔혹사다.

비정규직 조직률 10년 새 반토막
"만들기도 어렵고, 만들어도 곧바로 탄압"


4일 노동계에 따르면 지난해 8월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고용형태별 부가조사 결과 비정규직의 노조 조직률은 2.6%다. 2007년 5.1%에서 반토막 났다. 2009년 2.5%로 최저점을 찍었던 조직률이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이 노조를 만들었다는 소식은 끊이지 않고 들리는데 왜 조직률은 정체돼 있는 걸까. 노동계는 "노조 만들기도 어렵고, 만들어도 사용자 탄압으로 곧바로 무너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아무리 달려도 제자리로 돌아오고 마는 도돌이표 같다.

자동차 부품공장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비정규 노동자 140여명이 지난 3일자로 한꺼번에 해고된 일은 대표적이다. 이들이 금속노조에 가입하자 2개 사내하청업체 중 한 곳이 도급계약 종료를 발표했다. 신규 하청회사는 노조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비정규직지회와 교섭을 하는 듯하더니 사업포기를 선언하고 손을 털었다. 비정규직이 맡았던 생산업무는 정규직 관리자들이 대체했다. '노조 설립→업체 변경→사업 포기→정규직 대체생산'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회사 원청은 100% 비정규직으로만 생산공장을 돌렸다.

인천공항 교통센터 환경미화 노동자 209명 중 38명이 올해 1월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에 가입했다. 용역업체는 조합원들만 화장실 출입을 제한하는 전근대적인 방법으로 노조를 탄압했다. 이달 1일 용역업체 변경 과정에서 기존 직원 6명을 고용하지 않았다. 이 중 3명이 조합원이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다 해고된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조합원 9명은 이날 현재 250일이 넘도록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회사 정문 인근에서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계열사인 현대미포조선에서도 사내하청업체 폐업 후 조합원이 재취업에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폐업한 업체에는 조합원 3명이 있었는데, 재취업 과정에서 다른 하청업체들이 이들의 고용을 거부하고 있다.

"실제 사용자 상대로 노동권 행사 가능해야"
정부 적극적 개입 주문 이어져


원청 사용자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근로조건·고용에 실질적인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비정규직은 노조를 만들어도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할 수 없다. 노조와 하청업체가 교섭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사이 원청은 도급계약 해지·고용승계 거부 같은 방법으로 노조를 무력화한다. 전문가들은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 3권 보장을 위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을 요구했다. 원청 사용주를 '사용자'로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장)는 "간접고용 비정규직들은 힘들게 노조를 만들어도 원청이나 사용자들의 탄압에 그대로 노출돼 노조를 유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노동조건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원청을 상대로 교섭할 수 있도록 노조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업체변경시 고용승계를 명문화하는 내용을 근로기준법에 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이 같은 개정안을 발의했다.

특수고용직인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들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원청이 노조 가입 기사들의 재취업을 막기 위해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특수고용직을 비롯한 비정규 노동자의 노조 설립과 조직 확대를 막기 위해 사용자들이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관리한다는 의혹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오민규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전략사업실장은 "사용자들은 노조 설립을 피하기 위해 간접고용·특수고용 비정규직을 사용하거나 갖은 탄압을 자행한다"며 "노조법의 근로자와 사용자 정의를 확장해 비정규직의 온전한 노조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비정규직 노조를 보호하거나, 노동조건 개선하는 데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지원하라는 주문도 나온다. 권두섭 변호사는 "특수고용직이 노조를 만들 때 적극적으로 설립신고증을 발부해 정부가 노조 설립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며 "사용자가 비정규직 노조에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면 엄정하게 법 집행을 하는 것으로도 상당한 개선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제정남  jjn@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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