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가 조선소 작업장에서 숨진 채 발견돼 논란이 일고 있다. 숨진 하청노동자 김아무개씨(42)는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취업제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하청회사 동료들은 김씨가 다른 하청업체로 재취업한 이후 "대우조선해양에서 퇴직을 압박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체불임금 지급 요구하니 블랙리스트 낙인

11일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하청 노동자 살리기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동자 김아무개씨가 이날 오전 8시께 조선소 1도크 작업장 선박블록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김씨는 지난 5월 경남 거제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취업제한 블랙리스트를 작성·공유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용접을 하는 김씨는 조선소 하청의 재하청 형태인 물량팀 팀장으로 일했다. 호형호제하는 팀원 4명과 함께 한 팀을 짜 일했다.

생전 김씨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일했던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삼원의 사장은 지난 5월께 체불임금을 주지 않고 도주했다. 그러자 대우조선해양 관리자가 임금 지급을 약속했고, 새로 하청업체를 맡은 사장은 고용승계를 보장하는 대신 체불임금의 70%만을 받을 것을 제안했다. 100% 지급을 요구하는 25명의 하청노동자들은 전액을 받고 회사를 떠났다. 이후 25명 중 몇 명은 재취업을 위해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에 입사지원서를 냈다. 그런데 '단체행동' 등의 이유로 양 조선소 모두로부터 출입증 발급을 거부당했다.

재취업 성공했지만 퇴사 압박 '날벼락'

5월18일 일자리를 잃은 김씨는 지난달 14일께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성산기업에 지인 소개를 통해 어렵사리 취직했다. 그런데 김씨 취업사실을 확인한 대우조선해양이 김씨 퇴사를 하청업체에 압박했다. 김씨와 이전에 함께 일했던 이아무개(가명)씨는 "4명 동생들과 함께 일하던 물량팀장이던 김씨는 블랙리스트 문제로 자기 취업은 물론 동료 취업까지 어렵게 되자 괴로움을 줄곧 호소해 왔다"며 "평소 술자리에서도 동생들 취업문제로 펑펑 울었는데 원청이 끝내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자 극단적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죽기 전 자신의 심경을 담은 휴대전화 문자를 주위 동료에게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하청노동자살리기대책위원회는 긴급 성명을 내고 "대우조선해양이 블랙리스트를 관리하고 있고, 그에 따라 고인을 해고시킬 것을 하청업체에 요구한 것은 명확한 사실"이라며 "대우조선해양이 하청노동자를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조선소 대량해고 국면서 하청노동자 수난"

조선업 구조조정에 따라 하청노동자 고용불안 위기가 높아진 점도 이번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김춘택 대책위 정책홍보팀장은 "고용불안을 우려하는 하청노동자들이 블랙리스트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조선업 일자리가 없어지고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에 임금체불과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하청노동자들이 입을 닫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블랙리스트 문제를 그냥 둘 경우 조선업 대량 해고 국면에서 하청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입 밖에 내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치권도 이번 사태를 무겁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조선업 구조조정의 최대 희생자로 꼽히는 물량팀 노동자들의 고용안정 대책을 위해 다단계 하청 산업을 진단하고 법·제도 개선을 준비하고 있다. 을지로위 관계자는 "물량팀 노동자 문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8~9월께 국회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었다"며 "물량팀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의혹이 나오는 조선소 블랙리스트 문제도 관심을 가지고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근로자를 관리하지도 않고 협력업체에 근로자를 내보내라 마라 압박하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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