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인 2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이주·인권·노동·사회단체 국제연대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사업주에게 체불임금을 달라고 하면 무시해요. 공인노무사와 함께 가면 그제서야 줘요. 이주노동자들은 20여년 동안 한국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어요. 한국 노동자들이 육체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데도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에서 착취를 당하고 있어요. 노예제 같은 고용허가제를 철폐해야 해요."

우다야 라이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조 위원장이 2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행사에 참석해 울분을 토했다.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은 유엔이 1966년 정한 기념일이다. 60년 3월21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차별 반대집회를 벌이다 경찰 발포로 희생된 69명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제정됐다.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이날 행사 참석자들은 "한국 사회의 인종주의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고 우려한 뒤 "한국 정부가 법과 제도를 개악해 인종주의를 부추기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인종차별 조장하는 법·제도 폐지해야”

이주인권·노동단체는 한목소리로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국인고용법)상 고용허가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을 인종차별법안으로 지목했다.

고용허가제는 사업장 이동횟수를 3년 동안 최대 3회까지 제한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에서 폭행이나 욕설 같은 불합리한 인권침해를 받아도 참고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달 3일부터 발효된 테러방지법은 이주노동자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다. 특정 국가 출신 이주민이 테러범으로 의심받아 인권침해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준형 노동자연대 활동가는 "테러방지법으로 국가정보원은 국민을 사찰하고 조사하는 권한을 갖게 됐는데 첫 번째 타깃은 이주민이 될 것"이라며 "정부가 프랑스 파리테러 사태 이후 대테러 대책이라며 벌인 일은 이주민 밀집지역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는 것이었다"고 비판했다.

김세진 변호사(공익법센터 어필)는 "정부는 파리테러 사태 이후 마치 우리나라에 들어온 난민이 테러 용의자인 것처럼 말하고 테러방지법이 필요하다는 근거로 쓰고 있다"며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주노동자였던 적이 있었던 만큼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출입국관리법 개정안도 '인종차별법'으로 꼽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한 외국인이 사업장에 있을 것으로 의심될 경우 출입국관리 공무원이 사업장 방문 조사 또는 증거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이주인권단체는 이와 관련해 “제도 문제로 미등록 노동자가 양산되는데도 정부가 강제추방 정책만 지속하고 있다”며 “인종주의를 부추기는 법과 제도를 바꿔 이주민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결혼이주여성 안정적 체류 보장하라”

이날 행사에서는 '인종차별 철폐 손도장 찍기' 퍼포먼스가 눈길을 끌었다. 참석자들은 여러 색깔의 물감을 바른 손을 부딪치고 맞잡았다. 맞잡은 손에서 노란색 물감과 초록색 물감이 섞였다. 그런 뒤 "STOP RACISM"(인종차별 철폐)이라고 적힌 현수막에 손도장을 찍었다.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 한가은(29)씨도 퍼포먼스에 함께했다. 한씨는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기 위해 2006년 입국했다. 그는 “이주여성들은 이혼을 당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가정폭력을 당해도 참으면서 산다”며 “출입국관리법이 이주여성의 안정적인 한국 체류를 제한하고 있어 피해자들이 도망치듯 살고 있다”고 비판했다.

배우자 비자(F-2)상 체류기간은 1년이다. 체류기간을 연장하려면 배우자와 동행해야 한다. 지난해 6월 유엔 인종차별 특별보고관은 “한국 국적 남성과 결혼한 이주민 여성에게 별거·이혼, 자녀 유무에 관계없이 체류의 안정성을 보장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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