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사는희망연대노조 소속 씨앤앰과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투쟁 100일째인 17일 오전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17일 아침, 케이블방송업체 씨앤앰의 하청업체 소속 케이블 설치·수리기사인 이경호(46)씨는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빌딩 앞 길바닥에서 눈을 떴다. 이날은 지난 6월 시작된 파업이 꼭 100일째 되는 날이다. '노동인권 실현', '생활임금 쟁취', '단협투쟁 승리' 노숙농성으로 뜨거운 여름을 지새는 통에 색이 바랜 그의 옷은 오히려 주장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이씨는 17년차 베테랑 수리기사지만 늘 '신규 직원'이었다. 원청이 1~2년마다 협력사를 바꾸고 기사들은 다른 협력사로 신규채용됐기 때문이다. 점심도 굶고 건물 옥상과 전봇대를 맨몸으로 올랐지만 근속연수는커녕 임금도 오르지 않았다. 그런 마당에 원청인 씨앤앰의 최대 주주인 맥쿼리와 MBK파트너스는 회사를 매각하겠다고 나섰다. 그게 부당하고 억울해 파업에 참여했다. 지난 7월 업체는 그의 고용승계를 거부했다. 하루아침에 해고자가 됐다. "각오는 했어요. 그래도 파업이 이렇게 오래갈 줄은 몰랐어요. 우리가 원하는 건 그냥 고용불안 없이 일하는 건데…."

정부와 원청 방관에 길어진 파업

희망연대노조 씨앤앰지부·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케이블방송 비정규직 티브로드지부 조합원 1천200여명은 지난 6월10일 임금·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전면파업을 시작했다. 생활임금 보장과 다단계 하도급 금지, 고용보장, 지역방송 공공성 강화 등을 요구했다. 특히 씨앤앰의 경우 매각이 추진되면서 고용불안이 큰 문제로 떠올랐다.

사측은 직장폐쇄와 대체인력 투입으로 맞섰다. 노조에 따르면 원청들은 직영 유통점 등에 물량을 이관시키거나 협력업체들에게 제3의 업체가 수행한 사업비용을 부담시키겠다는 공문을 돌려 압박했다. 그런 한편 조합원 122명(씨앤앰 109명, 티브로드 13명)이 원청의 협력사 계약해지 과정에서 고용을 승계받지 못해 해고상태가 됐다. 씨앤앰은 정치권의 중재로 이달 11일 직장폐쇄를 중단했지만 티브로드는 아직 직장폐쇄를 고수하고 있다.

교섭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티브로드 하도급업체 노사는 지난 16일 교섭을 진행하고 임금 등에서 일부 합의했으나 주요 쟁점인 고용·산업안전대책과 파업 장기화에 따른 조합원 생계비 지원을 사측이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씨앤앰 하도급업체 노사 역시 17일 교섭을 진행했으나 사측은 임금 20% 삭감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주요 쟁점인 해고자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고 모르쇠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주요 쟁점들은 결국 원청이 나서야 풀리는데 원청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원청은 파업 내내 하도급업체의 노사교섭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무개입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청와대 문제해결 나서야

노조는 정부 개입을 촉구했다. 이날 노조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티브로드지부 조합원 200여명은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주민센터 맞은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청와대가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공정거래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고용노동부·방송통신위원회에 사태 해결을 위한 개입을 요구했지만 지금껏 노동부의 수시근로감독을 제외하고는 정부의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시우 티브로드지부장은 "원청이 사회적 책무을 다하기는커녕 협력사 노사갈등을 조장하면서 비정규 노동자들을 장기파업으로 유도하고 있다"며 "청와대가 원청의 책임을 촉구하고 문제 해결에 나서 달라"고 호소했다.

오는 24일은 이경호씨의 결혼 20주년 기념일이다. 100일 동안 월급을 갖다주지 못한 이씨는 아내와 쌍둥이 자녀들을 보기가 미안해 일부러 농성장 노숙당번을 더 서곤 했다.

"너무 미안해서 아내한테 인감을 줬어요. 정 힘들면 (이혼도장) 찍으라고…. 그래도 끝까지 싸울 거예요. 그리고 파업이 끝나면, 아내한테 진짜로 잘해 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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